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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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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가오는 2012년은 동북아 주요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교체되는 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대만 등 동북아시아의 주요 국가에서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이뿐 아니라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이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강성대국 진입의 해' 2012년은 북한 최고권력자 교체의 해가 되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벤트는 2012년 가을로 예정된 중국의 18차 당대회이다. 18차 당대회에서는 후진타오의 4세대 지도부를 이어 새로운 5세대 지도부가 탄생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중요한 시점을 앞두고 출간된 이 책은 차기 최고권력자 후보 시진핑에 대해 비교적 충실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현재 시진핑은 5세대 지도부의 최고 권력자로서 후진타오의 자리를 계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될 것인가? 후진타오의 등장 때도 그랬지만, 시진핑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이것은 중국 특유의 폐쇄적 정보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시진핑의 개인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모를 실언을 피하기 위한 신중하고 노련한 처사로 생각되지만, 어쨌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는 우리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갑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자 소마 마사루는 일찍이 1980년대부터 중국을 왕래하며 관련 정보를 취재해온 중국통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중국 내/외부의 각종 자료들과 관련 인사 취재를 통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입수해 시진핑이 그동안 걸어온 길과 그가 맞이하게 될 도전을 잘 정리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통해 볼 때 내년 18차 당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시진핑이 국가주석직을 승계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시진핑이 국가주석직을 승계한다 하더라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함께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직에서 태자당과 상해방, 공청단파의 점유 배분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넷째, 후진타오는 차차기인 제 6세대급 인사들을 주요 포스트에 얼마나 배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승계할 것이 확실시되고는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권력쟁투 역사에서 확실한 것이란 사실 아무것도 없다.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끝으로, 좋은 책을 번역하여 소개함과 더불어 꼼꼼하고 유려한 번역과 함께 한국어판을 위한 특별 챕터까지를 얻어낸 역자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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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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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로자 아줌마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이빨도 거의 없었다. 미소라도 지어야 아줌마는 평소보다 덜 늙어보이고 덜 미워 보였다. 그녀의 미소에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무엇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녀는 유태인 대학살 전인 열다섯 살 적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오늘날의 로자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살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보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잔뜩 찡그려가며 생각했다. 이런 모습일까? (147-148).

우리는 모두 미래를 두려워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투명한 미래가 불행한 현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불안한 미래의 예감은 조금씩 늘어나는 현재의 시름으로 점차 확신이 되어가고, 우리 겁쟁이들은 못견딜 것 같은 두려움에 현실로부터 도망치거나 애착을 가질 무언가를 찾아 마음 속의 욕망을 쏟아붇곤 한다.

 

그래도 죽기는 싫다. 우리는 살고 싶어한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닥쳐오는 또다른 삶이란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두렵고 심지어 혐오스러울 정도의 무게를 우리 위에 지우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 우리를 찾아오는 생을 맞이하고, 또한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도 좋지만, 희망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속이는 갸냘픈 희망보단 우리가 쓰러지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행한 이들이 서로를 감싸고 사랑하고 보듬으며 더욱 불행해져가는 이 이야기는 그 용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삶을 마주하는 용기는 사랑, 아니 그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애정이라는, 어쩌면 간지러운, 하지만 누군가의 어깨를 빌려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감했던 순간이 있을, 당연하고도 소중한 삶의 진실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나에겐 내가 사랑할, 그리고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끝으로, '자기 앞의 생'이란 제목은 별로다. '내 앞의 삶', 아니 차라리 '우리 앞의 삶'이라고 번역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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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s and Influence: With a New Preface and Afterword (Paperback)
Schelling, Thomas C. / Yale Univ Pr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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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셸링(Thomas Schelling)이 20세기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게임이론(game theory)의 기반을 닦았고,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군사 부문에서 그의 이론들이 실제로 활용되었으며, 2005년에는 그가 발전시킨 게임이론이 경제학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요즘의 게임이론은 수학적인 세련화가 고도로 이루어진 관계로 복잡한 수식과 그림들을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지만, 셸링의 작업들은 복잡한 수식들로 독자들을 난처하게 하는 책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전략적인 행동과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친절하게 차근차근 소개한다.   

셸링이 워낙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들을 썼지만, 이 책에서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외교, 특히 협상에 있어서 무기가 가지는 영향력이다. 무기란 가장 기본적으로는 전쟁에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떤 무기들의 경우 - 특히 핵무기의 경우 - 그것은 사용 그 자체보다 그것의 보유와 활용 가능성을 두고서 벌어지는 전략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할 때가 많다.  

책 속의 내용들을 보면 우리가 북핵 협상의 지난한 과정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전략들이 등장한다. '야금야금 전략(salami tactics)'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상대방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조금씩 야금야금 전진하는 방식으로,  협상의 대상을 잘게 쪼개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상대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 폐기를 위한 단계들을 조금씩 쪼개어 나아갔다 조금씩 물러섰다를 반복하며 협상을 힘들게 해왔음을 우리는 이미 지켜보아왔다. 셸링은 이것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는 엄마에게 졸라대는 아이의 예를 들며 일상 생활 속의 전략(?)들과 협상에서의 전략을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단순히 그의 설명만을 읽고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북핵 문제의 진전 과정들과 그가 소개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비교해보아도 흥미로울 것이다.  

북핵문제라는 중대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적인 협상 전략들을 소개한 셸링의 이 고전적 저작은 아직도 많은 함의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높은 명성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인해 셸링의 책들이 여러 권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루 빨리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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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Hardcover) - Fragile Superpower
Shirk, Susan L. / Oxford Univ Pr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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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외서 리뷰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원래 외서에 대해서는 이곳에 리뷰를 쓰지 않았지만 이 기회에 좋은 외서들이 어서 번역을 통해 소개되어 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싶은 마음에, 번역되면 좋을 책들을 중심으로 리뷰를 올리고자 한다.] 

중국에 관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이 책은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책의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 시기 미국 국무부에서 동아시아 문제,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담당했던 고위관료 출신 중국 전문가인 수잔 셔크(Susan Shirk)이다. 그녀는  대표적인 민주당 외교정책 전문가의 하나로 오바마 대통령의 캠프에 정책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고, 지금도 오바마의 측근 중 동아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긴밀하게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 중국 위협론이 전세계를 휩쓸기도 했고, 이제 한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해버린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를 서서히 하는 것 같다.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과 지난 올림픽에서 보여준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셔크는 중국이 비록 강대국이지만 '부서지기 쉬운 강대국(fragile superpower)라고 지적한다. 개혁개방 노선의 채택 이후 30년간 압축적으로 일어난 경제 개발과 개방의 과정에서 축적된 모순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고, 중국 인민들에게 더이상 마오쩌둥 식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지지할만한 설득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한국에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사실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지난 2000년대 초반에도 중국 전역에서는 해마다 수만건의 소위 '군체성사건(群體性事件)'이 일어났다. 매일 수백건의 민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그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쪼개지거나 주저앉을 거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이 책에서 수잔 셔크가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중국의 위험이 위험한 중국을 만든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안정적인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경우 중국의 지도부가 호전적인 성향의 대외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선출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인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를 상시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사회적 문제로 인해 중국 인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태에서, 이들이 대외문제에서도 유약하게 대처하여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권력을 잃고말 것이다.  

만일 대만에서, 혹은 한반도에서 미중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동아시아는 어떻게 될까. 중국 지도부가 여론을 의식하여 강경한 군사적 대응책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 위험한 플래시포인트는 바로 대만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쇠락한 지금, 중국 인민들의 강력한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두려워하는 현 중국 지도부는 실제로 대만과 관련한 안보 이슈에서 언제나 미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의 국내정치가 불안정해지고 중국 사회의 모순이 심해질 수록, 중국의 대외정책은 민족주의적인 국민 감정을 만족시키는 배타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의 결론이 주는 함의는 세계적 경제위기가 중국을 덮친 최근의 상황에서 더욱 큰 함의를 가진다. 미국이 사주는 수출품에 의지하여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중국은 이제 미국 시장의 경색으로 경제 성장 둔화를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사회가 분열과 혼란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마지노선을 7%-8% 가량의 경제성장률로 두고 있다. 그 이상으로 빵이 커지지 않으면, 사회 내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리고 이제 그만큼의 성장이 어려울 거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수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고 있고, 도시의 농민공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떠밀려나고 있다. 

이제 이런 상황 속에서 외교적/군사적 갈등 상황이 닥쳤을 때 -  지난 유고 대사관 오폭이나 정찰기 추락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 중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중국 지도부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이것은 미국인들만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중국의 바로 옆 나라이자, 이어도 등의 문제로 잠재적인 해양 영토 갈등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만에서 군사충돌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자동으로 연루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다.   

셔크는 중국이 위험해지면, 그것이 위험한 중국을 만들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중국 사회는 경제 위기를 맞아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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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고고학 - 정치 인류학 연구
삐에르 끌라스트르 지음, 변지현.이종영 옮김 / 울력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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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대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서구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배태된 서구중심적, 그리고 근대중심적인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있다. 정치이론 및 연구의 핵심적인 연구 대상인 국가와 사회 관계 역시 서구 사회의 근대화 및 국민국가체제 형성 과정의 경험을 그 중심에 두고 있고 비서구세계의 정치 제도 발전 역시 결국은 서구사회의 발전 양상을 답습하는 것, 혹은 거기에서 약간의 변이를 가진 것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원시사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정치인류학자 삐에르 끌라스트르의 책들은 서구중심적 국가관과 사회관에서 벗어난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끌라스트르가 정의하는 원시사회란 국가가 출현하지 않은 사회이다. 여기서 국가란 폭력을 독점한 유일 권위체로서의 정치제도를 이야기한다. 그는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회 연구를 통해, 원시사회는 독점적 권위체의 출현을 방지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권위적 리더쉽을 통한 권력 장악 시도나 권력의 집중화 시도는 사회에 의해 거부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가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곳에서는 언제나 지배와 복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라는 권력정치적 정치학의 기본 전제이다.

원시사회 역시 추장, 혹은 족장으로 불리는 일종의 리더가 존재하지만, 끌라스트르에 따르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리더쉽은 지배자로서의 리더쉽이 아니라 제한적인 위세(prestige)만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가 발견한 남아메리카 원시사회 리더의 덕목(혹은 요구조건)은 1) 뛰어난 언변, 2) 자신의 것을 구성원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희생정신, 3) 사회를 불필요한 전쟁이나 권력 집중화로 이끌어가지 않는 정치적 신중성이다. 우리는 전쟁시에 발휘되는 군사적 지휘능력이나 개인적인 전투능력이 추장에게 요구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전쟁시에만 칭송될 뿐 전투가 종료된 다음에는 다시 리더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끌라스트르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거나 혹은 상시적인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을 때 한 집단은 군사적 작전수행을 위한 위계구조의 지속과 함께, 우세한 폭력을 보유한 특정 세력으로의 권력 집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끌라스트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왜 원시사회들은 국가 없는 사회인가? 더 이상 정치 이하적인 맹아가 아니라 완전한, 완성된, 성숙한 사회들로서의 원시 사회들이 국가를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국가를 거부하기 때문이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사회적 몸체가 분할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야만인들"의 정치는 권력의 분리된 기관의 발생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이고, 우두머리와 권력 행사 사이의 치명적일 만남을 가로막는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 권력의 분리된 기관이 없는 것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존재를 분할되지 않은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내부에서 지배자와 예속민, 우두머리와 부족 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의 전체로서의 사회가 권력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원시사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그래서 원시 사회의 우두머리들은 권력이 없고, 바로 그래서 권력은 하나의 몸체로서의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불평등의 거부, 분리된 권력의 거부, 바로 이것이 원시 사회들의 동일한 그리고 부단한 염려이다. 원시 사회들은 매우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투쟁을 포기한다면, 권력의 욕망 그리고 복종의 욕망이라고 명명되는 은밀한 힘들-지배와 복종은 바로 이 힘들의 해방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을 가로막는 것을 그친다면, 자신들의 자유를 잃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그러한 권력은 단 하나의 방향으로 행사되고, 단 하나의 프로젝트만을 실현한다. 사회의 존재를 분할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사회 내에 분할을 도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는 위세에 대한 애호가 권력의 욕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감시한다. 권력에 대한 우두머리의 욕망이 뚜렷이 드러날 때 취해지는 조치는 매우 간단하다. 그를 쫓아내거나 죽이는 것이다. 분할이라는 유령이 원시 사회에 출몰하지만, 원시사회는 그 유령을 쫓아낼 수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원시 사회들의 예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쳐준다. 분할은 사회성의 존재에 내재적이지 않다는 것, 달리 말해 국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국가는 특정한 시점에 발생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폭력의 고고학 "제 6장 원시 사회에서 권력의 문제" pp.151-152)


그렇다면 이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이것이다. 국가 출현 이전의 사회가 국가와 계층화, 권력 집중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 많은 곳에서 원시 사회는 왜 국가 제도를 갖추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왜 불가역적인 것인가? 끌라스트르는 원시 사회를 중심으로 연구한 학자이기에 그 자신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국가 발생 과정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찰스 틸리(Charles Tilly)가 밝힌 바 있듯이 국가의 출현 과정은 높은 수준의 전투 능력을 보유한 집단이 계급화되면서 이들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전사 집단 간의 투쟁을 통해 보다 강력한 집단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지배구조가 발생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문화로서의 전쟁'은 클라우제비츠적인 '정치의 도구(수단)으로서의 전쟁'으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끌라스트르가 밝혀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낸 장애물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었는지는 각각의 사회가 맞닥뜨렸던 역사적, 환경적인 배경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끌라스트르의 연구가 보여주는 원시 사회의 모습은 원시적인 형태의 민주주의와의 몇 가지 유사성으로 인해 흥미를 끈다. 소위 '도편 추방제'가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체제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의 핵심적 원칙 중 하나가 '유능한 사람의 선출'보다는 '유능한 사람에 대한 견제'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인디언 사회에서 사회가 원하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려는 리더를 그의 유능함에 상관없이 추방하듯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그리스 민주주의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유능한 언변과 사회에 대한 봉사 및 희생을 주요 덕목으로 하는 원시 사회의 리더쉽 역시 고대 원시 민주주의는 물론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리더에게 수사적으로나마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끌라스트르가 밝혀낸 원시 사회의 내재적 메커니즘은 사회 그 자체의 속성으로서 아직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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