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서 ㅣ 암실문고
브라이언 딜런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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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에세이는 내 안의 어두운 방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발굴하게 한다. 암실문고로 출간된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를 읽으며 나는 자주 독서를 멈춰야 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신 뒤 매매하기로 결정한 텅 빈 집을 배회하며 기억의 복원을 시도하는 작가의 작업 앞에서 ’내‘기억의 복원 작업이 반자동적으로 실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지병을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예고 없이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 그들이 남긴 집과 물건, 사진, 부모와 나의 몸, 부모와 함께했던 장소들, 가족이 모두 떠난 집에 홀로 남은 작가의 ’가정 고고학’은 이어지고 깊어지며 작가가 회피하려고만 했던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쓰는 작업 전체가 애도의 과정이라고 요약하면 뻔한 서평이 되려나? 이 책은 흔하지 않은 완성도 높은 애도의 작업물이다.

좋은 소설은 나를 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향해 질주하도록 만들고, 좋은 에세이는 나를 찾아 내 이야기를 꺼내놓게 한다. 아버지의 유품 중 하나인 재떨이를 두고 쓴 글을 읽다가 나는 돌아가신 친조부모님의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안방 장롱 문에 양각된 사슴과 나무 등을 쓰다듬으며 잠들었던 기억이, 거실에 깔아놓은 호랑이 카페트 위에서 인형을 늘어놓고 정글 탐험 놀이를 했던 기억이 망각 속에서 부활해 내 눈 앞에 상영되었다. 특히 호랑이 카페트는 선이 굵고 묘사가 섬세하여 진짜 호랑이처럼 보였다. 그 부드러운 카페트의 감촉은 안온한 유년시절의 지배적인 감각으로 남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집은 팔렸다고 했고, 물건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내게 남은 건 몇 장의 사진과 기억들, 방학 때마다 살다시피 했던 그 고장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장소들.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듯이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어두운 방이 필요하다. 브라이언 딜런이 복원해 낸 사진에 담긴 건 자기 자신이다. 부모님의 젊었을 적 사진이 말해 주는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 부모님이 남긴 물건이 암시하는 내가 성장하면서 통과해 온 시간, 부모님의 죽음이 상징하는 내게 남은 시간, 시간을 책으로 쓴다는 것은 쉬워 보이면서도 아주 어렵고, 그걸 이 정도까지 완공하는 데 성공한 작가의 어두운 방에 나는 이끌리듯 들어선다.

-375쪽,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 그 움직임이 남긴 흔적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새겨져, 우리에게 유익하게 쓰이거나 강렬한 깨달음을 준다. 시곗바늘의 움직임, 계절들이 내보이는 생동감이나 나른함, 얼굴이나 몸에 나타나는(아주 점진적일 수도, 반대로 아주 빠를 수도 있는)노화의 흔적 같은 것들. 우리는 시간의 이러한 특성을 불현듯 알아차릴 때마다 중대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특히 불확실하거나 후회스러운 순간이 다가올 때면 그 깨달음을 우주적 또는 영적으로 중대한 무언가로 착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덧없는 의식이야말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순간(시간)들과 지점(공간)들을 한데 모은 뒤, 그 덩어리에 나름의 형태까지 부여해 주는 유일한 매개체라는 느낌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시공간의 쓰레기들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영웅적으로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게 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더 높은 차원의 주파수와, 만물을 조화로운 화합으로 이끄는 신성의 손길 같은 것과 공명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낭만적 경향을 띤 의식이라는 단자 주위를 맴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이 특이한(그리고 어쩌면 텅 비어 있을)영역이 영적 충만이라는 허울로 채워져 있으리라는 발상도 받아들일 수 없다. 기억에 관한 한 나는 스스로를 유물론자로 여긴다. 다시 말해, 나는 어떤 우연한 공간적 배경에서 전면으로 떠밀려 나온 산물일 뿐 그 배경의 중심이 아니며, 하물며 주인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에서 오히려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어두운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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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랑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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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입니다(가제본)

어떤 단편소설은 장편보다 더 오래 뒷맛이 남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이십 대 초반 내일로라는 프리패스 기차표를 끊고 이 도시 저 마을 돌아다니며 여행했을 때와 같이, 최은미의 단편집 [다른 사랑]은 독자를 태워 여러 장소에 데려다 준다. <상리>에서 고천군 상리 마을로, <무장하는 날>은 DMZ에 인접한 도시의 발굴지로, <정선>의 강원도 정선으로 정신없이 이동하며 따라가던 우리는 어느새 <김춘영>에서 폐광지역 4곳을 연결하는 길인 운탄고도의 김춘영 집에 도착해 넋을 잃는다. <그곳>의 말리산과 체육센터가 있는 한 도시와 <이 모든>의 튀르키예 가지안테프를 웃으며 여행한 우리를 소설은 마지막으로 <고별>의 은산시 장례식장에 데려간다. 꼭 영상매체만이 장소를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릴스나 유튜브 영상은 그 장소의 냄새만큼은 묘사할 수 없다. [다른 사랑]에서 전반적으로 강렬하게 느껴지는 여름의 냄새, 물러가는 과일 냄새나 폭염을 피해 시민들이 모여든 체육센터의 복잡미묘한 냄새들, 지진으로 무너진 가지안테프의 베이란 냄새 등이 소설을 다 읽은 뒤로도 끈질기게 남아 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무색무취의 안전한 사랑 너머의 시큼하고 미지근한 ‘다른‘ 사랑의 향기가 배어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김춘영>을 고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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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 - 플라톤부터 현대 철학까지 세계적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
윌 듀런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바다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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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책(?) ㅋㅋㅋ 그만큼 이해가 잘 되는 철학 입문서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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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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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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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웃음 -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 ㅣ 앳(at) 시리즈 10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 / 마티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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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펼치고 새로운 형식? 에 감동의 눈물 ㅠㅠ 동문선판이랑 나란히 둔 나 권력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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