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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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인쇄하여 한 부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붙이고, 한 부는 근무하는 학교 책상에 걸어놓았다. 계엄령이 급습하고 내란 사태가 지속되는 상황을 계속해서 확인하며 저 두 문장을 되뇌었다. 타인을 향한 폭력을 숨기지 않으려는 인간들과 그들을 막아내려는 인간들의 충돌, 각자의 손에 들린 총과 응원봉, 폭력과 빛.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유독 즐겨 읽는다. 폭력과 고통이 난무하는 이 형편없는 세계에서 기어코 한 조각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삶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견디고 있나?


-101쪽, 화단이 마당 북쪽에 있어서, 나무들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거울 세 개를 놓았다. 남중하는 햇빛이 느리게 거울을 지나가면 창문 같은 빛이 벽에 비친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출간된 첫 책이자 에세이집에서, 작가는 북향집을 구입하여 마당에 작은 정원을 꾸리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햇빛이 잘 닿지 않는 집이기에 거울을 사서 빛을 반사해 나무와 꽃에게 보내기로 한다. 십오 분 간격으로 거울의 각도를 조절해 가며 비껴가는 햇빛을 모아 나무에게 보낸다. 꽃에게 보낸다. 작가가 포집한 빛을 먹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열린다.


이 세계에 빛 같은 건 없으리라 절망하기 쉬운 엉망진창의 세계 속에서 거울을 가지고 빛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눈 앞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포기하려는 이들 앞에 빛으로 된 창문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이 있다. 앞으로 거울로 빛을 포집하는 직업을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좋겠다. 그 빛을 먹고 우리가 열심히 자라날 수 있었으니까.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오늘도 살아냈다.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 더 살아낸 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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