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쪽, 실제로 읽는다고는 하지만 읽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 아래 형체들이 지나가는 것만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잡하지 않는 것,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시선을 벗어나는 것, 말했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듯한 것, 너무 눈부셔서 눈을 멀게 하는 것, 우리를 너무 바짝 끌어당긴 나머지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 부서지고 불완전해 보이는 것,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것, 떨어지는 것, 붕괴되는 것. 그렇다, 의미는 결코 떡하니 주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때로 거부당하고 때로 부재한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페이지를 마주한다. 우리는 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꾸는 꿈의 일부가 되고 싶으니까. 이 책의 비법들이 신비를 통해 살아남았으니까. 우리는 이해의 실패라는 성운에서부터 줄곧 호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