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풀
앨리 스미스 지음, 이상아 옮김 / 프시케의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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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의 조합으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사람을 만들고, 예술을 만들고,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앨리 스미스 [아트풀], 프시케의 숲

앨리 스미스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작년 고요서사에서 진행된 문학 생태 워크숍이었다.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을 한 권씩 읽어나간 4주 간의 마법 같았던 시간을 통과한 뒤 마음 속 방 한 칸에 '앨리 스미스' 명패가 걸렸다. 소전서림 읽는사람 '이달의 소설' 8월에 앨리 스미스의 신간소설 두 권이 연이어 선정되어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중 한 권을 골랐다.

'계절 4부작'을 읽으며 놀랐던 건 전통적인 소설 형식의 파괴와 보편적인 소설의 정서가 부딪히지 않고 조화롭게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였다. [아트풀]역시 앨리 스미스다운 소설이다.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아트풀]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게 소설이라고? 도입부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나는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와 죽은 이가 남긴 강연록을 읽는다, 이건 소설답군, 예술에 대한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시와 소설과 에세이를 인용하고 메모와 주석을 남긴 강연록이 편집 없이 그대로 삽입된다, 이런 걸 소설이라 하나? 죽은 이가 돌아와 살아 있는 나와 대화한다, 소설?

여기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곳이 있다. 현실과 상상의 교환, 현실과 상상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허구의 다른 세상뿐 아니라 실재하는 다른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같은 책

[아트풀]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 연인을 잃은 '나'의 이야기와 죽은 연인이 남긴 강연록과 강연록을 읽고 주석을 남기는 나의 목소리가 뒤섞여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을 깨뜨린다. 이 소설을 요약하라고 하면 난감하다. 제목의 '아트풀'부터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예술을 주제로 다룬 소설이라 아트풀이 아니라 책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아트풀 다저의 이름이다. 이 캐릭터가 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냐면...일단 독자인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지 않아 해석이 어렵다.

해석이 어렵다. 의미를 파악하기 까다롭다. 요약이 불가능하다.

나는 애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의 감정은 해석이 어렵다. 상실감은 파악하기 까다로운 마음이다. 애도는 요약할 수 없다. '나'는 이걸 알고 있다. 그래서 죽은 연인이 남긴 강연록을 뒤적인다. 돌아온 연인과 대화한다(고 상상한다). 애도는 요약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요약할 수 없다. 이 책은 한 권으로 된 애도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요약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예술도 요약 불가능한 형식과 내용의 총체가 아닌가, 한 줄 요약을 불허하는 소설만의 고유성을 앨리 스미스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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