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 보부아르와 넬슨 올그런의 사랑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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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고, 나만의 별명을 붙이고,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수백 가지의 표현법을 찾아내고,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조리 꺼내 보여주면서 너도 내게 숨기지 말고 다 말하라 명령하고. 1947년부터 1964년까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넬슨 올그런에게 보낸 304통의 연애편지에 담긴 말들, 9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이 책은 펼쳐들기만 해도 페이지 틈 사이로 사랑이 쏟아져 독자의 손을 적신다. 편지의 발신자 '나'는 수신자 '너'를 분명 사랑한다.


-32쪽,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느낀 기쁨은 사랑이었어요. 이제 고통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지닌 모든 얼굴과 마주해야 해요. 재회의 기쁨,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테고, 그것을 원하고, 그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질 거예요. 절 기다려 줘요. 저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제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아마도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늘 편지를 쓰겠어요. 당신도 그렇게 해 줘요. 저는 영원히 당신의 아내랍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연애편지], 을유문화사


우리는 사랑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기, 몸도 마음도, 어쩔 수 없이 잠시라도 이별하게 되면 온 몸과 마음으로 그리워하기, 재회를 갈망하기, 내가 떠올리는 사랑의 얼굴이란 이것이다. 항상 함께 있기.


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너, 넬슨 올그런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계약결혼한 사르트르를 떠날 수 없어.

나는 영원한 당신의 아내야.

하지만, 나는 너와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너를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 껴안고 밤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나는 파리를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 싶지 않아.


연애편지를 읽으면서 자꾸만 떠오르는 물음표들,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하는가? 세상에 이런 사랑이 가능한가?


-355쪽, 일하고 여행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 어쩌면 제가 그 모든 것에 지나친 건 아닐까요? 그런데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는지 미지근하게 일하는 것보다는 아예 안하는 걸 더 좋아해요. 당신을 미지근하게 사랑할 수 없어요, 달링. 그리고 만일 여행하고 일하는 것을 잠시 멈출 수 있다 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멈출 수 없어요. 그러므로 제 방식대로 당신을 사랑하고, 제 방식대로 당신을 그리워하면서, 그리고 어떤 절제도 없이 잠을 자겠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 삶은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인식하고 정열적으로 노력했다. 당대 실존주의 작가이자 철학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계약 결혼이라는 독특한 삶의 형식을 창조해 서로를 보완하며 쉬지 않고 글을 쓰고 강연하고 잡지를 발간하고 번역과 각종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낸다.


그는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거부한다. 둘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각자 새로운 사랑을 활발하게 찾아나선다. 보부아르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사랑을 발견한다. 304통의 편지가 사랑을 싣고 바다를 건너갔다. 그는 사랑하고, 넬슨의 청혼을 거절하고, 사랑하고, 불안해 하고,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은 잡초처럼 자라고 있으며, 자라는 걸 멈추지 않고 거목이나 괴물이 돼 버릴까 무서워요. 그러면 우리는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합시다.'(309쪽), 헤어지고, 우정으로 이어지고, 불쑥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고, 성공을 축하하고, 애정하고, 위로하고, 넬슨이 보부아르의 책에 자신이 언급된 부분에 분노해 관계를 끊어버릴 때까지 편지는 계속된다.


이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위태롭고 불가해한 보부아르의 사랑은 사랑의 낯선 얼굴이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파리의 작가와 미국의 작가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 그가 애쓴 사랑의 방법, 삶에 대한 사랑과 사랑을 향한 사랑 모두를 지키기 위한 한 여성의 분투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랑을 거부하고 보부아르만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새로운 사랑을 창조한 노력이 비록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사랑이란 끝이 없는 것이기에 사랑의 과정 전체가 사랑이다.


-536쪽, 우리의 진정한 삶 속에 사랑이 살아갈 수 있게 합시다.


우리는 사랑의 어떤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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