횔덜린 서한집 상응 5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장영태 옮김 / 읻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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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네.

횔덜린 서한집, 287쪽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 시대, 과거에 쓰인 편지를 모은 서한집을 읽는 이유는, 먼 미래 sns를 거의 하지 않을지 모를 시대, 과거에 업로드된 sns의 글과 사진을 읽는 후손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지, 그러니까 호기심. 직접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인물로부터 생생한 목소리를 최대한 가깝게 듣고 싶다는 호기심으로부터.


생전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 독일의 대표 시인으로 재발견된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서한집을 읽었다. 이름만 겨우 알고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빵과 포도주)정도의 인용문만 들어본 시인의 편지들은, 살아 있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헤겔과 노이퍼 같은 절친에게, 실러 등 존경하는 이에게 보낸,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속 횔덜린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열렬하며, 애정이 가득하고, 때로 불안하고, 이따금씩 고독했다. 시인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뇌하고, 자신의 작품이 크게 인정받지 못해 우울해 하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면서 동시에 실망하는 그의 목소리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쁨 없이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우리 가운데 옳게 피어날 수 없지. 거대한 고통과 거대한 기쁨이 인간을 가장 훌륭하게 기르는 법이라네.

횔덜린 서한집, 206쪽


불운한 시인은 결국 정신착란을 일으켜 반평생 유폐되다시피 살아야 했다. 서한집 부록으로 짧게 실린 정신착란 시기의 편지들은 급격히 짧아지며 위태로운 그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언제나 고통받는 것은 시인인가? 인간을 사랑한 시인의 예민한 영혼은 삶과 세계의 부조리 속에서 고통받았을 것이다. 응답받지 못한 사랑, 인정받지 못한 문학, 이루어지지 않는 사상, 큰 고통 속에서 기쁨처럼 태어난 아름다운 시와 소설, 편지들, 횔덜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 순수한 시인의 목소리는 엉망진창인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그의 시와 편지를 통해 영원한 청춘의 목소리를 엿듣는다.


내가 언젠가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한 소년이 되면, 봄과 아침과 황혼은 매일같이 나를 조금씩 회춘케 해서 마침내 내가 최후를 느끼고 야외로 나가 앉아 거기로부터-영원한 청춘을 향해서 길을 떠날 것이다!

횔덜린 서한집,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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