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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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쪽,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하지 않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쓸 문장이 이미 적힌 책을 읽으면, 

심지어 그 문장이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면, 

나는 이 책에 단단히 붙들릴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이 되고 학교 숙제로 매일 일기를 쓴 뒤로, 30년 가까이 일기를 쓴다. 매일 쓴다. 

진통을 겪고 아이를 낳은 그 날에도 매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했다.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가지고 동시에 잃는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기억이 되며 기억은 망각의 바다에 가라앉는다.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 19쪽,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일기장으로 내 존재를 빈틈없이 떠받치고 싶기 때문이다.

망각이 두려워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망각 일기'다. 

망각을 두려워하던 작가의 생각이 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 주는 계기가 아이의 탄생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기를 쓸 시간은 사라졌다. 

나는 일기를 쓸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한다. 

하루하루가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그럼 내 존재 역시도 사라지는가? 

나는 있다. 


- 91쪽,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일기는 나로 하여금 존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기는 말 그대로 나라는 존재를 구성했다. 일기를 쓰지 않고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러던 중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내가 쓰기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나를 필요로 했다. 내게는 아이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이 필요했지만, 아이는 그보다도 더 나를 필요로 했다.

망각은 필연적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 간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나 역시 필사적으로 일기에 집착하는 태도가 많이 유해졌다. 

하루에 한 줄, 혹은 아무것도 쓰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다.

나는 기억한다. 아이는 기억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인다.

잃어야 가질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새 일기를 쓴다.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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