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과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우리가 학생일 때 만났던 선생님 중 한두 명, 반에서 재능 많은 친구가 성대모사를 시도해 박장대소를 유발하는-그의 제스처, 특유의 버릇, 말투의 재현도가 높을수록 높아지는 찬사-특이한 선생님의 기억. 러시아에서 탈출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 프닌은 '프닌 연기'가 파티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할 만큼 특유의 개성과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그의 어색한 영어(그의 러시아어가 음악이었다면, 그의 영어는 살인이었다-98쪽), 번역으로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서툰 영어는 나보코프 특유의 언어유희와 결합되어 프닌어를 형상화한다.
프닌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캐릭터라고, 소설의 화자 '나'가-그의 정체는 소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밝혀진다-앞장서서 그를 놀리는 데 진심으로 임한다. 소설 도입부에서 기차를 잘못 탄 줄도 모르고 행복해 하는 프닌의 외모를 놀리고 프닌의 정형화된 여행 짐 목록을 세세히 열거하며 놀리고 프닌이 기계와 상성이 맞지 않다며 놀리고 프닌의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알뜰하게 써먹는다.
프닌은 웃음거리의 소재가 될 인물인가? 그는 풍자의 대상이 될 만한 큰 잘못을 지었나? 소설을 읽으며 화자 '나'의 프닌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웃으며 따라가다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잘못 탄 기차에서 내려 심장 통증을 느끼며 과거 러시아의 기억을 떠올리는 프닌, 첫 결혼에 실패하고 전 아내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울음을 터뜨리는 프닌, 러시아에서 어긋났던 약혼과 그 약혼자가 수용소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뒤 세상에 대한 실망에 짓눌리는 프닌, 그를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프닌, 그의 고통과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은 정당하다. 프닌은 함부로 웃음의 소재로 쓰일 인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