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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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소설이 어울릴까?


세계 책의 날은 4월 16일 봄이고, 가을은 자타공인 독서의 계절이고, 겨울은 귤 한박스와 두툼한 러시아 소설을 챙겨 칩거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뜨거운 태양 아래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진짜 비가 쏟아지면서 눅눅해지는 책장, 여름과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집의 제목은 '여름'이다.


김연수 작가님이 2021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낭독회에서 얻은 깨달음 이후, 방금 쓰인 따끈한 짧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 낭독회 릴레이를 시작했고 그 소설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5분에서 10분이면 한 편을 낭독할 수 있는 짧은 소설이다. 


보통의 단편소설 길이보다 당연히 짧고, 소설의 구성 요소는 충실히 갖춘 소설들. 한 편 읽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편 읽고 수박 좀 먹다 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길이의 소설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그들이 찰나에 깨달은 순간이, 젖은 이마에 문득 스쳐간 한 줄기 바람처럼 우리를 통과하는 소설이라면 여름에도, 아니 여름이야말로 읽기 좋은 이야기들이 아닌가.


한 편 읽고 잠시 수영을 하고 더위를 식하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은 뒤 다음 한 편을 읽다 보면, 우리 안엔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에 대해 고찰하느라 더위를 생각할 틈도 없지 않을까.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발밑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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