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쉐의 [마지막 연인] 첫 장을 읽은 뒤, 당연하다는 듯 위스키를 가득 채운 잔을 옆에 두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술을 마셨다. 알코올의 힘이라면 주인공 존과 같이 책을 펼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보통의 나는 존의 아내 마리아처럼 '심연으로 떨어지는' 벽걸이 카펫을 지어낼 수 없고, 존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내 리사와 같이 '장정'을 떠날 수 없다. 내 눈은 등장인물들이 종종 마주치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보지 못하고, 검은 그림자와 마주칠 일이 없고, 술집 안의 블랙홀을 찾아낼 수 없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뭔데?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데? 존이라는 남자가 의류 회사에 다니는데 그의 취미는 독서인데 책을 읽으면 그 책 속에 등장한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실제 세계에서도 보이는데 존의 아내 마리아는 온 집에 전기가 통하게 만드는데 자기 아버지의 초상화와 대화를 하고 존이 읽은 책 내용을 담은 카페트를 만드는데 존의 상사인 사장 빈센트는 꿈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는데 그의 아내 리사는 남편을 찾아 꿈으로 떠났다가 '장정'을 떠나 황하 강을 건너는데 존의 고객이자 고무나무 농장주인 레이건은 농장 직원인 에다와 사랑에 빠지는데 또 에다는...이걸 줄거리라 부를 수 있을까.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사실상 요약이 불가능한 소설이다. 찬쉐의 대표작인 [마지막 연인]은 실험적이다, 소설의 전통을 해체한다, 따위의 말로 이 소설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깨어있는 채로 꾸는 꿈이다. 글로 마시는 술이다. 술에 취하면 세계의 경계가 연약해지고 불가능하다 여긴 일들이 가능해지듯 소설 속 주인공들도 아무렇지 않게 상식의 경계를 부순다. 독한 소설 한 권은 목을 태우고 위장을 덥히며 머리를 깨운다. 어느새 나는 이 소설을 정신없이 들이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