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 시대를 부유하는 현대인을 위한 사람 공부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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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시간의 만으로 떠밀려 와 서성거릴 때 슬며시 붙잡은 것이 '사람 공부'다. 지반 침하로 무너지는 삶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신의 짓궂음이 초래한 이 절망과 고독을 타고 넘어가고 싶었다. "나는 무엇인가? 혹은 나는 무엇이 아닌가?" 나는 일자나 무한이 아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서문)




호젓한, 고요하고 쓸쓸한 시간의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책은 시작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뻔하고, 지극히 어렵고, 그러나 중요한 질문. 


인간이란...생각하는 존재야!

인간이란...먹는 존재다!

인간이란...인간 아냐?


질문의 범위가 바다의 수평선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인간은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다. 모래알 같이 무수한 다름과 복잡성을 품고 흩어져 있(10쪽)는 인간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인간을 정의하기보다 정리한다. 27가지의 관점으로.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서문을 읽고, 목차를 훑으며 수많은 인간의 정의 중 마음에 드는 것, 호기심이 생기는 챕터를 골라 읽으면 재미있는 독서가 될 수 있다. 슬쩍 나만의 정의를 끼워넣기도 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그토록 많은 방들-호모 로쿠시어스Homo Locusius'부터 읽었다. 오래 전 방을 화자로 한 어설픈 단편소설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59쪽, 방이 없다면 삶도 없다.


'먹어야 산다-호모 쿠커스Homo cookus'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람들의 '언제 한 번 밥 같이 먹자!'가 당연한 인사법이 되고, 영화 속 유행어가 된 '밥은 먹고 다니냐?'에 담긴 밥의 중요성.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건 당연하지만, 최근 쏟아지는 먹방 컨텐츠들은 먹는다는 행위가 어떤 선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운 유행으로 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고 쓰는 나 역시 매일 먹는 음식들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일기에 꼭 쓰고 있으니,

역시 인간은 '먹는 존재' 


-227쪽, 아는 사람에게 '밥 한 끼 먹자!'라는 말을 가볍게 던지지만, 우리는 이 말의 깊고 무거운 함의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라고 장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이 말했을 때 음식이 존재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고, 정체성의 기반이라는 것을 떠올려야 마땅하다. 내가 먹는 음식으로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드러난다.


장석주 작가님의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로, 책 속에 인용된 다양한 책들을 소개받고 알아가는 데 있다. 이번 책 역시 수십 권의 책들이 언급되고 풋내기 독자는 제목을 받아적느라 바쁘다.

인간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지만, 나는 나라는 인간을 '책 읽는 인간-호모 부커스Homo bookus'라 칭하겠다. 아침에 눈을 떠 아침식사 하면서 책 읽고, 외출할 때 책 한 권은 반드시 챙기고, 잠을 청하며 또 책 읽고, 숨 쉬듯이 읽는 일상. 


-242쪽, 나는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주변에 늘어놓고 읽는다. 내 손에 들린 책과 그 주변에 놓인 책들은 엄격한 분류법에 따라 같은 분야에서 선택된 책이 아니라 그때그때 직관적으로 끌리는 책들이다. 질 들뢰즈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하나의 표준이나 엄격한 분류법에 따라 계통화된 수목적 위계가 아니라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인 '리좀'형이다. 나는 아무 매임 없이 다소 무질서한 반계보적이고, 비분류적인 책 읽기를 선호한다.


숨 쉬듯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촘촘하고 밀도 높은 이번 책도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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