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나의 희망은 어느정도는 충족되었는데, 곳에 따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해변 안쪽 지역을 몇시간씩, 때로는 며칠씩 걸으면서 모처럼 기분이 아주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문장)
제발트가 쓴 [토성의 고리] 첫 문장은 우리를 가벼운 혼란 속으로 데려간다. 내가 지금 읽는 것이 소설인지, 에세인지, 여행기인지 그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써퍽 주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해변이라 하니 바닷가를 따라 도보로 여행을 하였구나, 머릿속에 정리하고 책을 읽는다.
혼란은 점점 더 심해진다. 여행 중이라는 화자의 이야기는 토머스 브라운이라는 우리에게 낯선 작가가 등장하고 써머레이턴 대저택, 아 영국엔 오래된 저택들이 많겠구나, 하고 바닷가를 따라 걷는데 청어 이야기를 하더니 잠깐 방심한 사이 보르헤스의 단편 속 거울이 불쑥 우리를 비추고 조지프 콘래드와 콩고의 비극, 태평천국의 난과 서태후에서 누에로 중심 화제가 계속해서 바뀐다.
[토성의 고리]는 분명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의미의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정리된 결말을 맞이하는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 전체를 느슨하게 이어주는 중심 흐름은 존재한다.
첫문장에서 화자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지역을 홀로 걸었다는 부분에 주목하자. 이 여행 일년 뒤 그는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다. '오랜 과거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파괴의 흔적들'을 보며 느꼈던 전율의 기억이 그를 마비시킨 것이다. 병원에서 그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여행 중 어떤 파괴의 흔적들을 보았는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접점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쓴다. 하나씩 따로 들고 보면 독립적인 소재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다.
별의 잔해가 모여 생성된 토성의 고리처럼.
나는 이 소설을 2011년에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어디선가 제발트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이 소설과 [아우스터리츠] 두 종이 번역 출간된 시기였다. 20대의 나는 [토성의 고리]를 한 번 읽은 뒤 독후감은 따로 남기지 않았다. 당시 나는 제발트를 제대로 감상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 줄 짜라 감상평만 남기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사실 가까이서 보면 별의 잔해들이 이어진 결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