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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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퍽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나의 희망은 어느정도는 충족되었는데, 곳에 따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해변 안쪽 지역을 몇시간씩, 때로는 며칠씩 걸으면서 모처럼 기분이 아주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문장)

제발트가 쓴 [토성의 고리] 첫 문장은 우리를 가벼운 혼란 속으로 데려간다. 내가 지금 읽는 것이 소설인지, 에세인지, 여행기인지 그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써퍽 주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해변이라 하니 바닷가를 따라 도보로 여행을 하였구나, 머릿속에 정리하고 책을 읽는다.

혼란은 점점 더 심해진다. 여행 중이라는 화자의 이야기는 토머스 브라운이라는 우리에게 낯선 작가가 등장하고 써머레이턴 대저택, 아 영국엔 오래된 저택들이 많겠구나, 하고 바닷가를 따라 걷는데 청어 이야기를 하더니 잠깐 방심한 사이 보르헤스의 단편 속 거울이 불쑥 우리를 비추고 조지프 콘래드와 콩고의 비극, 태평천국의 난과 서태후에서 누에로 중심 화제가 계속해서 바뀐다.




[토성의 고리]는 분명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의미의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정리된 결말을 맞이하는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 전체를 느슨하게 이어주는 중심 흐름은 존재한다.

첫문장에서 화자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지역을 홀로 걸었다는 부분에 주목하자. 이 여행 일년 뒤 그는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다. '오랜 과거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파괴의 흔적들'을 보며 느꼈던 전율의 기억이 그를 마비시킨 것이다. 병원에서 그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여행 중 어떤 파괴의 흔적들을 보았는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접점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쓴다. 하나씩 따로 들고 보면 독립적인 소재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다.

별의 잔해가 모여 생성된 토성의 고리처럼.


나는 이 소설을 2011년에 한 번 읽었던 적이 있다. 어디선가 제발트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이 소설과 [아우스터리츠] 두 종이 번역 출간된 시기였다. 20대의 나는 [토성의 고리]를 한 번 읽은 뒤 독후감은 따로 남기지 않았다. 당시 나는 제발트를 제대로 감상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 줄 짜라 감상평만 남기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사실 가까이서 보면 별의 잔해들이 이어진 결과물'




작품의 잔해들만 주워들다 만 싱거운 평가.

8년 만에 다시 읽은 토성의 고리 속 반복되는 소재들이 눈에 띈다.

토머스 브라운은 소설 첫 장과 마지막 장에 등장하며 화자에게 죽음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도록 돕는다. 책 표지에 부분적으로 등장한 렘브란트의 해부학 강의 그림은 시신을 봐야 할 의사들의 시선이 묘하게 비껴나가 해부학 도해서를 향하고 있다. 진리를 직시하지 못하고 진리를 복제한 도해서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여기서 3장의 보르헤스 단편 <뜰뢴, 우끄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속 거울이 등장한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민음사의 [픽션들]에 실려 있는 이 단편에 토머스 브라운이 역시 언급된다. 여기서 거울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킨다'는 속성을 강조하는데, 이 단편은 복잡한 백과사전식 서술 끝에 '세계는 틀뢴이 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누에. 거울은 현실을 복제하고 누에는 실이라는 현실을 끝없이 생산한다. 거울처럼 복제되는 전쟁들, 1차와 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가 저지른 학살과 파괴, 콩고의 어둠의 심연,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쉼없이 이어지는 파괴의 불꽃, 태평천국의 난과 원명원 파괴, 아일랜드 독립투쟁, 불타는 저택들, 폐허로 남은 군사기지 오퍼드니스.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없다. (199쪽)

화자를 쓰러뜨린 것은 우울이다. 파괴가 반복되는 인간 문명의 어리석음이 주는 끝없는 우울. 전쟁은 계속되고 인간은 누에처럼 실을 뽑아내는 도구로 전락해 노동력을 뽑아내다 소진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트 [토성의 고리] 259쪽

진보하리라 믿었던 인간의 역사가 제자리걸음, 아니 오히려 뒤로 후퇴한다는 깨달음은 우울하다. 작품 전체적으로 흐르는 중심인 우울의 정서, 우울의 백과사전식 서술은 낯설고, 낯설기에 매혹적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이 우울의 정서에 빠져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기보다 이것을 쓰기로 마음먹은 화자의, 제발트가 가진 강한 의지다. 입원한 병원 창틀 속 네모난 무채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작가는 쓴다. 불꽃이 휩쓸고 간 인간 역사의 폐허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토머스 브라운의 문장을 빌려 소설을 끝맺는다.

그리고 비단 상인의 아들이었으니 비단을 보는 안목이 있었을 토머스 브라운은 [널리 진실로 오인되는 견해들]의 내가 다시 찾아내지는 못한 어느 부분에서 당대의 네덜란드 습속에 대해 적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 그곳에서는 망자의 집에 있는 모든 거울과, 풍경이나 사람 혹은 들판의 열매가 그려진 모든 그림을 슬픔을 표현하는, 비단으로 만든 검은 베일로 덮는 풍습이 있었고, 이는 육신을 떠나는 영혼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보거나 다시는 보지 못할 고향을 보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소설의 마지막 문장)

인간의 거대한 실수를 복제하는 복도 끝 거울에 검은 베일을 덮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이 소설을 읽고 거울을 베일로 덮을 수 있도록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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