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 이제 같이 함께 걸어볼까요, 하며 가볍게 걸음을 슬쩍 옮기던 책이 바로 돌변하여 동학을 시작으로 불교 이론, 중세철학, 경제학, 과학과 조세법까지. 대학 강의였다면 네? 갑자기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며 교재를 뒤적거렸을법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개론 수업을 들으러 왔고, 일주일의 수강 변경 기간 동안 음, 이 강의 느낌 좋은 걸, 하며 수강하기로 결심했더니 3회차 강의부터 갑자기 대학원 수업으로 강제 이동당한 느낌이었던, 그야말로 읽기에 버거웠던 책, 타인의 자유를 읽었다.


처음엔 인덱스 테이프를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나는 테이프를 포기하고 연필을 손에 쥐어야만 했다. 테이프가 하염없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연필로 도구를 바꾼 뒤 모르는 부분엔 동그라미와 물음표를 기재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엔 짙게 밑줄을 그었다.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 연필로 메모가 덧씌워졌다. 이렇게까지 어려울 일인가, 하고 투덜대려고 할 즈음 한 꼭지가 마무리되고, 그 후엔 잠깐 쉬어갈까,라는 느낌으로 조금은 덜 난해한 글이 이어졌다. 강약의 조화 덕에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고자 한 편집자분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학문들이 한 사람에 의해 한 권의 책에 몽땅 담겨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결국 책 속에 있었다.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다(p.30)"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학문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깊이의 비젼 대신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며 맥락을 구성하라(p.30)"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책을 읽으며 서두에 말한 '맥락의 독서', '미완성의 독서', '중도의 독서', 그리고 '항상 중요한 무엇인가를 남겨 놓는 잉여의 독서'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갔다. 연관성 없어 보였던 학문들이 하나의 학문과 한 권의 책으로만 채워놓은 빈틈이 많은 세계 속에서 점차 비어있는 퍼즐을 완성해가며 결국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방법,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이성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할 때 인간은 교양의 나라로 도피하게 된다.(p.126)"는 문장을 통해 학문을 학문으로만 마주하지 말고 믿고 소리 내어 말하라고, 움직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얼마나 이해했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배시시 얼굴을 붉히고 뒷머리를 긁적대며 20%....?라고 답하겠지. 만약 이 책이 대학 강의였다면 기말고사 시험지엔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열심히 들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라며 눈물 젖은 긴 장문의 편지를 적고 교수님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으리라.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려웠고 버거웠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는 사람은 어떠한 일도 성취하지 못한다.(p.55)". "인간은 실재하는 진리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 인격을 완성해나가야 하며 이렇게 사는 것만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인간의 길이(p.98)'므로, 물음표를 잔뜩 써놓은 키워드들을 잘 정리해서 하나하나 공부하며 맥락을 구성해가야겠다. 우선은 가장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 릴케, 부터 시작해보아야지.


이 책의 저자인 김인환 교수님은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의 지기라고 하신다. 표지 속 숲을 걷고 있는 노신사 두 분을 황현산 선생님과 김인환 교수님이라고 생각하며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면 든든한 스승의 뒤를 따라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 <난다 출판사> 덕분에 황현산 선생님을 알게 되었었다. 2013년에 발간된 <밤이 선생이다>를 통해서였다. 처음 선생님의 글을 본 이후로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반갑고 감사해서 열심히 뒤를 쫓았었다. 그런 선생님이 떠나가신 자리에 선생님의 친우분이 찾아와준 느낌이다. 황현산 선생님보다는 조금 더 엄하고, 무뚝뚝하시지만 흔들림 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또 다른 선생님의 뒷모습을, 다시 쫓아 걸어가 보아야지.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책에 대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 소설가 박완서 대담집
김승희 외 지음, 호원숙 엮음 / 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곳에선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처음으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려봅니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책과 거리가 멀었던 어린이, 아니 청소년, 아니, 청년 시절까지도. 정말 책과 먼 인생을 보낸 덕분에, 그나마 책과 조금 가까워진 후에도 경성의 작가들이나 일본 작가들에게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부끄럽게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것도 작가님의 소설 작품이 아닌,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인 <세상에 예쁜것>을 통해서 말이죠. 그 후에 부러, 몇 권 열심히 찾아 읽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지난 기록을 되짚어보니 <친절한 복희씨>와 제 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던 <그리움을 위하여>가 제가 읽은 선생님의 작품의 전부더군요. 감히 이런 제가 '우리'에 끼어도 되는걸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을, 그리고 인간 박완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읽으며, 선생님은 한결같은 분이셨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과 문학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인터뷰어와의 대화이던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한결 같음으로 써내려가셨을 선생님의 작품들을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점이, 저는 지금 참 부끄럽습니다. 서둘러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선생님의 성함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문학동네와 세계사에서 각각 출간해 놓은 산문 전집가 소설 전집을 사야할까, 아니면 선생님의 작품이 태어난 시간을 따라 <나목>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아직까지 고민만 수 없이 하며 선생님의 작품읽기를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초등학생 때, 전업주부셨던 엄마는, 책을 자주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통, 책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한가하실 때면 뿅뿅대는 핸드폰 게임에만 몰두하시곤 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함께 책 읽기를 권해보았습니다.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엄마가 읽어서 좋았던 책이 뭐냐 묻자,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선생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완벽한 제목을 말씀하시진 못하셨습니다. 그 왜..... 싱아...... 라고 하셨죠.)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제가 읽지 못한 선생님의 소설이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에게로 다가서는 그 시작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하기로. 그리고, 선생님의 소설을 하나하나 엄마와 함께 읽어보기로 말입니다.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나의 추억거리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누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재미나지도 않는 엄마와 저의 무사안일한 매일매일이 선생님의 소설을 통해 반짝이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고통에만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해서 무기력해져버린 삶에도- 위안이 필요하고 (P201),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의 작품은 엄마와 저의 무기력해진 삶에 분명, 큰 위로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소설과 수필을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가면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아끼는 수 많은 사람들의 등 뒤에 살짝, 줄 설 수 있게 되겠지요. 그 때가 오면, 다시 한 번 이 책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꺼내어 읽고, 선생님, 마음이 한껏 좋았어요, 만나뵈어서.라고 부끄러운 마음 없이 외쳐보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했다. 서서비행의 그는. 여전히 괴팍한 농담과 본인 혹은, 아주 약간의. 그러니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제외한 '독특한'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미션 같은 문장들을 내던지며 여전히 그는, 결론적으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읽고싶게 만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모를 문장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열흘간 품에 안고 다닌 이유는 그가 금정연이기 때문이었을터다. 금정연이라는 서평가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첫 책 '서서비행'때문은 아니고 (물론 그 책을 재밌게 읽었고- 그 때에도 똑같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지간에 책을 읽고싶게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그가 어떤 문학상 작품집에서 '에반게리온'을 들먹이며 여전히 '웃기게' 써내려갔던 평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에게 평론까지 웃기게 쓰는 '재밌는 작가'였고 그리하여 나는 이 책 역시 결국은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열흘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실제로 낄낄대며 글을 읽어내려간 것도 사실이다. 이해 해서 낄낄댄게 아니라 이해가 안가서 낄낄댔다고 말해야 더 솔직하겠지만.


10명의 작가들의 책을 정말이지 단 한권도 읽지 않았고, 몰랐지만 그래서 더 낄낄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간질간질 나의 무지를 약올리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짜게 아니게, 놀려대는 것 같은 그의 고약한 농담에 웃고있는 내 스스로가 자존심이 상해서, 뒤로 갈 수록 진짜로 책을 읽고싶어지게 된 것을 보면 그는, (지금은 비록 퇴사했다하지만) 내추럴 본 도서MD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책 제목 그대로 ‘난폭’하기 짝이 없게- 마치 멱살을 잡혀 질질 끌려가듯이 무릎 꿇린 채 ‘읽어! 이래도 안 읽을 테냐!’하고 혼나듯 소개 받은 10명의 작가들 중 누구 하나 쉽사리 다가서지 못할 것 같지만, 아. 음. 그래도 이대로 라면 너무 자존심이 상하니까 일단 ‘걸리버 여행기’부터 읽어볼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보다 트위터를 통해 먼저 알게된 분. 황현산 선생님의 책 중 내가 두번째로 손에 쥔 책 <우물에서 하늘보기>. 전작 <밤이 선생이다>를 너무나도 좋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많았던 한편, 영 친해지기 어려운 시에 대한 이야기라서 출간 되자마자 덜컥 구매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내밀지 못했던 책이었다. 아, 물론 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난폭한 독서>를 겨우겨우 읽어내느라고 더더욱 첫 장을 펼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도 있도 말이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을 때도 동일한 것을 느꼈었는데 황현산님의 글은, 유난히 앞 뒷 문장의 연결성이 강한 것 같다. 앞의 문장을 읽지 않을경우, 뒷 문장의 의미가 전혀 읽히지 않는 문장이 많았다. 그래서 여느 책을 읽을때면 밑줄긋기 식으로 몇 개의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 반면, 황현산님의 글은 그게 불가능했다. 한 꼭지 한 꼭지가 통째로, 강하게 묶여있는 문장들이 가끔은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을 때도 같았다. 유난히 한 꼭지를 다 읽어내는데에 시간이 배로 걸렸고 숨이 찬 듯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숨 찬 느낌이 싫지 않았다. 문장에 쫓기듯 달려나가는 느낌이 오래간만에 그저 활자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활자와 싸우고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일어난 일로인해 떠오르는 어떤 시에 관해, 혹은 어떤 시인의 글쓰기에 관해, 또는 시 쓰기라는 행위의 의미에 관해. 시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내는 글들을 읽으면 잘 알지 못한다 생각했던 시라는 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적이거나 퇴폐적인 예술이 아니더라도, 예술을 예술되게 하는 기본요소에서 사치는 큰 몫을 한다. (중략) 시를 쓰는 시인이 감정의 사치를 위한것이 아니라면 운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 왜 그렇게 긴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강렬하게 뇌 속에 박힌 단어는 다름아닌 '사치'였다.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기기"위한 시인의 사치. 그 단어 하나하나에 담겨져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의 쓰임새를, 그 사치의 '가치'를. 우리는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기를 두려워하는 지쳐빠진 마음"으로 모른척 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시라는 문학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시라는 짧은 문장, 짧은 단어들 속에 꽉 들어찬 사치스럽게 쓰여진 의미가 버겁고, 해석하지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선택되기까지의 단어가 담고있는 시간과, 의미에 대해 조금이나마 '눈치' 챌 수 있게 된 것. 그럼으로써 한 걸음 더 '시'라는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한 것 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아름다운 문장의 사치를 함께 누리고 싶어졌다는 것 만으로 말이다.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읽은 긴 한 단락의 글을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싶다. 황현산 선생님의 좋은 생각이 담긴 좋은 글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싶다. 건강하시길.



"나태와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 미뤄둔 숙제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쌓아둔 죄악이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는 제가 할 일을 내내 누군가 해주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누군가 해 줄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다. 아니, 기다리지도 않았다. 책 한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런 것이지"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며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쉴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자출신 작가, 장강명의 소설은 기자라는 직업군 특유의 특성 탓일까. 지독히 현실적인 것 같다. 다분히 '있을 법 한 이야기'를 가지고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강렬하게 내던지는 스타일이랄까. (고작 두 작품 읽어보고선 뭘 다 아는것처럼.) 한국 사회는 줄세우기 문화가 너무 강하다. 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한국 사회는 유독'이라는 말을 덧붙이지는 못하겠는데 어쨋든,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의 줄세우기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내가, 살아봐서 잘 알겠다. 그런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는 그래서. 호주는 좋았을까? 그랬을까? 


난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줄 뒤쪽에 서 있는 스스로가 싫어서 였을 것이다. 계나는 앞으로 '외국'에서 사는 것으로 한국식 줄세우기에서 앞줄에 선 '기분'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아 끊임 없이 한국에서 여전히 시댁 욕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와, 프로그래밍도 못하면서 IT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비교우위의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여기 이 지점이다. '비교우위'. 남들과 다르게, 남들보다 잘, 남들보다 멋지게 살아야하는거다. 그런 행복이 과연 언제까지나 유효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본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그들은 아니 우리는 또다시 줄을 세울 것이다. 그 속에서 아마 줄 뒤에 선 자는 또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한국에서 '탈출' 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비교우위의 안도감을 느끼며 또, 그곳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계나는 '기자 남편과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다시 호주로 떠난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으로 한동안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갈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계나는 분명 멋진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행동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굳이 호주가 아닌 이 지옥 안에서 해 낼 순 없었던걸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것 또한 어쩔수가 없다.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것이 반드시 '내가 아닌 당신 때문에' '빌어먹을 사회 시스템 때문에' 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는걸까. 이미 우리, 나 자신이 그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만이 우리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건 아닐까.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항상 드는 생각은, '적어도 우리 세대부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과 '그러나 우리 세대 별 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뒤석여 참, 뭐라 한마디로 정리가 안되고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