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리커버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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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를 쓴 얀 마텔의 초기 중단편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은 에이즈로 앓다 죽은 친구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와 잘 어울려 다니던 후배 폴의 건강이 악화되고, 그 원인이 에이즈로 밝혀진다. 에이즈 감염경로는 교통사고로 인한 수혈이다. 폴의 가족은 패닉에 빠진다. '나' 역시 학교생활을 엉망으로 하게 되고, 폴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TV를 하고, 게임을 하고, 무력한 시간들을 흘려 보낸다. 급격하게 악화되어 가는 폴을 지켜보던 '나'는, 그와 함께 소설을 창작할 것을 결심한다.


"어쨌거나 폴은 열아홉 살이었다. 열아홉 살인 사람은 어떤가? 백지다. 모든 소망과 꿈과 불확실성이다. 모든 미래며 작은 철학이다. 우리 둘이 건설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무에서 유를, 헛소리에서 그럴 법한 것을, 삶과 죽음, 신, 우주, 그 모든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초월해서 실제로 그것들이고 싶었다." (p23)


'나'가 소설 창작을 할 것을 결심했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마음 속에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거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을 때,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 때, 그 누구도, 그 무엇에도 지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거였다. 상상력을 변형시키는 재주를 부리는 것. 보카치오가 14세기에 했던 일을 우리가 20세기에 해보는 거야. (중략) 세상을 끌어안는 이야기꾼이 되는 것……. 폴과 내가 그렇게 공허를 부수어야지." (pp23-24)


자신들이 창조한 헬싱키의 로카마티오 일가의 이야기를 쓰되, 각각의 에피소드는 20세기의 역사상 있었던 큰 사건들과 유기적인 연관을 맺도록 하는 것이 규칙이다. '나'는 최대한 이성적이면서도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나, 폴은 건강이 악화될수록 부정적인 이야기를 이끈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백육십만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싶"(p66)을 정도로 괴로워하지만, 폴의 곁을 한결같이 지킨다.


"폴만, 로카마티오 일가만 생각한다." (p82)


결국 폴은 죽고(그의 죽음은 본문이 시작하자마자 나왔으니 스포일러는 아닐 테다), '나'에게 폴이 남긴 마지막 역사적 사건이 전달된다. 신파적 감수성을 배제한 채 재치있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결국은 날 울렸다. 삶은, 의미있다. 죽음이 있기에 더욱. 이야기, 그리고 삶에 관한 소설이다. 얀 마텔, 거장의 탄생할 것을 예고한 작품이다.  


두번째 단편은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불협화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다. 워싱턴을 관광하던 '나'는 우연히 철거중인 극장에서, '월남 참전 용사들의 바로크 실내악 앙상블' 공연을 보게 된다. 단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게 된 이 음악회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천지가 찢어지는 경험이다. 음악이 완벽하지 못했음에도 '나'는 감동이란 말로는 부족한,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몇 분 동안 내 삶의 모든 것은 쓰레기였고, 고민과 어리석은 소리는 저만치 밀려났다 ㅡ 구름이 갈라지듯이. 난 숭고함을 보았다." (p114)


공연이 끝나고, '나'는 충동적으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는 존 모턴을 따라가 대화를 한다. 그로부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외국의 전쟁이고 미국의 상처"(p98)에 지나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은, 소설 후반 '나'를 흐느끼게 한다. 인간이 공감하고, 연민하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들에 관한 기록이다. 겪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야, 반드시 그래야만, 내게 세상은 지옥이 아니다. 


세 번째 단편 <죽는 방식> 역시 매력적이다. 얀 마텔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는 그 시작부터 확실히 드러났던 듯하다. 교도소 소장이 사형이 집행된 자의 어머니에게 법에 따라 편지를 보내는 내용이다. '죽는 방식 18', '죽는 방식 213', '죽는 방식 319' 등으로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되고 변형된다. 과연 이런 처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 음식으로 무엇을 먹었든, 죽음 앞에 덤덤했든, 흥분했든, 사형 직전 자살을 했든간에.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 와중, 단연 눈에 들어오는 두 가지는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글을 남긴 '죽는 방식'과, 테이프를 남긴 '죽는 방식'이다. 그렇게, 우리는 의미를 남기고, 찾는다.


<비타 애터나 거울 회사: 왕국이 올 때까지 견고할 거울들>이 마지막 단편이다. 전쟁을 겪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해 넘쳐 나는 물건들 속에서 사는 할머니와 그녀의 잡동사니들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손자가 있다. 


"난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지 않을 거야. 그건 확실하다." (p204) 

"행복은 다양한 크기의 물건 속에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커다란 제품 속에 있는 게 아니라구."(p205)

"난 물질을 통해서 존재하지 않을 거야. 물질은 날 냉담하게 만든다." (p205)


그러던 손자는 할머니의 거울 만드는 도구를 통해, 그녀를 한걸음 이해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 삶을 바꿀 필요는 없다. 각도만 조금 바꾼다면 족한 것이다. 


삶과 죽음을 말하고, 이야기를 말한다. 작가로서의 이야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 우리는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곧 우리다. 책에 넘쳐나는 것은 문장력이 아니라 생명력이다. 팔딱팔딱,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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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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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들에게 세상은 거대한 벽이었다.  식민지 체제, 봉건사상, 남성중심주의라는 억압적 질서는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김명순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윤심덕은 자살로,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p228, 편집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세계 일주기이다. 
육로로 시작하는 세계 여행은, 지금의 남북 정세와 맞물려 묘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도, 평범한 관광객으로서의 면모도 볼 수 있다.
나아가, 여성으로서,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엿볼 수 있다. 

미술품에 대한 자세한 감상이 나올 때는 지루해지기도 하다가, 
"너무 많아서 보고 나니 모두 그것이 그것 같다."(p154)고 할 땐 설핏 웃기도 했다.

예술가에게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반가움이다. 

다음과 같은 국가별 성격 분석(?)이 나오는데, 흥미로워지기도 한다.  
"영국인은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고상하고, 자제력이 많다. 규칙적이고 활동력이 뛰어나며, 의지가 강하다." (p166)
세계일주다 보니, 한 국가에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단시간만에 파악한 그녀 자신의 생각인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스위스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며 쓰기를,
"우리 것은 무엇이든지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작은 나라의 정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p63)
식민지 국민으로서 갖는 자괴감, 생각이 많아진다. 

그녀가 가장 사랑한 도시는 단연 파리였다. 
"화가가 있어야만 할 파리요, 파리는 화가를 불러온다." (p95)
파리의 가정에 머물렀을 때의 일을 말할 때는, 자신을 포함해 그 가족이 "여섯 식구"(p103)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든지 명랑하고 유쾌"(p109)한 이 가정의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로서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그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파리를 선망한다. 
당시 <삼천리> 잡지에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는, 그녀의 깨달음이 그대로 실려있기도 하다.

남편과 헤어져 여행을 하다가도 다시 모여 식사를 하면 행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힘든 여행의 피곤도 부부가 마주앉아 식사할 때는 멀리멀리 물러가고 단란한 행복이 있었을 뿐이다." (p148)
그러나 이 여행이 끝나고 얼마지 않아 그녀의 뜻과 관련없이 남편과 헤어졌다고 하니, 산다는 건 신비한 일 투성이다.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결국 행려병자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녀가 러시아를 지나며 불렀다는 노래 '오로라'가 실려 있는데, 그 때문일까. 가사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그 후반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나는 뜬 수풀
바람 부는 그대로
흐르고 흘러서
한없이 흘러
낮에는 길 걷고
밤엔 밤새껏 춤추어
말년엔 어디서
끝을 마치든" (p33)

완벽하게 개인적이기만 할 수 있는 글은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일기마저도, 시대를 내포하고 있다. 나혜석의 글 역시 그렇다. 식민지 조선의 국민으로서, 또한, 억압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으로서의 일기는, 시대의 아픔을 말한다.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 나혜석/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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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존 피어슨 지음, 김예진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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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다. 

본인의 자산을 파악하기도 힘들만큼 부유했던 진 폴 게티라는 실제 인물이 있다.

책은, 그 스스로 왕조라고 불렀던 게티 일가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부의 시작은 진 폴 게티의 아버지 조지 프랭클린 게티로부터 시작한다.

조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보험업으로 벌어들인 밑천으로 석유사업에 투자해 백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모범적인 기독교인이 어떤 상을 받는지 묘사한 이야기책 같은 삶"(p34)을 산 것에 비해, 

아들 진 폴 게티는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택한다.


"돈은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도덕성을 완전히 날려버렸고, 돈 덕분에 폴은 사실상 이중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삶이었다."(p57)


그는 마약을 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생활을 갖는다. 

이성에 대한 취향도 확고하다.

"청소년기를 갓 지난 젊은 아가씨들"(p62)을 좋아하는 진 폴. 

"이 부분은 폴의 성적 취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롤리타처럼 어린 님펫들을 좋아하는 취향은 이후 이 가족에게 다양한 드라마와 재앙을 가져다주게 된다. 결국 폴은 딸이나 다름없는 나이의 여자들과 다섯 번 결혼해 모조리 실패했다."(p62)


그의 경거망동에 대한 벌이었을까.

아버지 조지는 아들에게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고, 저자는 진 폴의 돈에 대한 끝도 없는 탐욕이 여기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생존하는 미국인 중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던 진 폴 게티, 

그러나 매일 택시비를 기록하고, 봉투와 고무줄을 재사용하는 등 사무용품과 난방비를 절약하던 사람. 

자선사업 또한 그와는 무관하다. 


"이토록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쉽게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음이 다가오는 가운데 그가 어떻게 그 기쁨에 찬 물질을, 자신에게 불멸의 위대한 희망을 가져다준 그 물질을 함부로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p19)


그의 가족들의 말 많고 탈 많은 삶이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아들의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한 납치 사건에 진 폴 게티가 대처한 방식도, 한 축을 담당한다. 

1980년대의  한 기자는 게티라는 이름이 "가족기능장애라는 단어와 동의어"(pp26-27)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저자의 시각은 곳곳에 드러난다. 

"게티 가문의 재산에 관해 밝혀지지 않은 가장 큰 수수께끼는 어째서 그것 때문에 수혜자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았는가에 있다."(p26)


"폴이 사업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지닌 특수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 어떤 정의에서도 결국 폴은 욕심 많고 비정한 천재 사업가이면서 감정적으로는 섹스에 굶주린 청소년 수준에 불과한, 기괴한 혼종이고 괴짜였다."(p77)


책은 돈이 불러들인 이 난장을 지루하리만큼 성실하게 풀어 나가는데, 

이 지루한 화법이 작가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묘하다. 

그게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와 지리멸렬함을 참아내면서도 끝까지 읽어내게 한다. 

성실한 연대기, 흔한 교훈, 지루함, 그런데도 묘하게 인내심을 자극해 끝까지 읽게 하는 것.

그 조합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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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숙녀들의 사회 - 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
제사 크리스핀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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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는 "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뜨거운 문장으로 이 책의 추천사를 맺었다.

나로선 이렇게 쓸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과 간절히 대화하고 싶다. 


세상 곳곳에서 나를, 우리를 발견하는 요즘. 

저자는 죽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한다.


"내 인생은 정말로 내 것인가, 아니면 남이 나를 위해 골라준 것인가? 이 모든 게 정말 나답긴 한가? 이런 질문들이 내 존재를 잠식해나갔고 마침내 나의 성채는 몇번이고 절망으로 붕괴했다."(p11)


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러니까 순간일지언정 자살을 떠올리기까지 했을 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택한 여행의 동반자는 죽은 사람들이다. 

불면의 밤들을 함께한 작가, 화가, 작곡가 등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나는 언제나 기존 인생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한, 실을 끊어내고 방황한 영혼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버텼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아야 했다."(p13)


다음 문장들을 보며, 나폴리4부작의 릴라를 떠올렸다.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게 거의 원자 수준에서 지겨웠다. 내가 해체되기를, 나를 한데 묶고 있는 화학적 결합이 약화되고, 나의 모든 조각들이 천천히 공기 중으로 용해되기를 바랐다. 내 소망은 더는 죽는 게 아니었다. 내 새로운 소망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무언가로, 좀더 튼튼하고 독일적인 원자들로 대체되는 것이었다." (p19)


마치 릴라를 통해, 직접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증발하고 싶었다고. 


그녀가 찾은 첫번째 죽은 사람은 베를린의 윌리엄 제임스다.

"불확실성의 무게"(p28),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려보낸 수십년의 세월"(p41)을 딛고, 19세기 가장 훌륭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사람. 

저자는 윌리엄 제임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세상의 영광과 결핍, 재난과 아름다움을 고요히 이해한다. 철학자 제임스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폭력과 고통을 머리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든 낙관을 유지한다. 세상의 나쁜 것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파괴하지 않는다. 단지 그 옆에 나란히 존재할 뿐이다." (p24)

그는 기록한 바 있다. "내가 처음 자유의지로 행한 건 자유의지를 믿는 것이었다"(p48)라고. 

절망의 순간을 승화시킬 줄 알았던 철학자다.

그의 이야기는 저자가 택한 '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타자는 트리에스테의 노라 바너클이다.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아닌,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선 것. 

저자는 우리가 예술가의 아내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아내가 예술가의 뮤즈일 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바가지를 긁고 천재의 발목을 잡을 때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그게 지금껏 노라가 문맹, 재미없는 사람, 잡년으로만 그려진 이유일 거다. 노라가 저지른 대죄는 천재 제임스 조이스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는 남자 제임스 조이스와 사랑에 빠졌다."(p56)


저자는 노라 바너클을 문학 시대의 아내로, 자신을 또 다른 문학 시대의 정부(情婦)로 규정한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게 가능한 선택지가 이 둘뿐인 것처럼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p72)

"친구들이 아내로 변신하는 걸, 남편을 위해 자기 존재의 일부를 닫기 시작하는 걸 목도했다. 남편의 소망을 위해 자신의 소망을 포기하는 사례들을 봤다. (...) 나도 그런 여자의 손에 길러졌다. 부부라는 단어 자체가 상대를 끌어당기지 않고서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서로 얽힌 채 실로 기워진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아내로서의 삶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를 보았기에 이를 바탕으로 아내의 삶 자체를 경멸했다." (p74)


그녀의 글은 시종일관 솔직하고 뜨거웠다. 


"나는 내 연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가 데려다줄 멋진 신세계를 함께 여행하는 정교한 환상에 젖는다. 

 나는 내 힘으로 트리에스테에 왔다. 트리에스테행은 내가 결정한 일이고 기차표도 내가 번 돈으로 구입했다. 이 근사한 장소까지 지도를 그린 사람도, 낙타를 이끈 사람도 나 자신이다. 

 그러나 나의 이자벨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묻는다. 같이 짐을 끌고 이국 땅에서 내 동지가 되어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녀를 나타나게 하려면 우선 내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임을 인정해야 한다고."(p83)


세번째 죽은 사람, 사라예보의 리베카 웨스트.

리베카 웨스트에 대한 평가는 통렬하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 역시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저자는 웨스트의 삶의 이면, 인간 리베카를 들여다본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훌륭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전기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비판당하고 있음을. 

아버지는 쉽게 면피권을 얻지만, "어머니는 딱 두 발자국만 앞서 걸어도 자식을 버린 이기적인 년"(p127)이 되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리베카는 그녀의 책에서 인간 리베카를 철저히 배제한 대신, 전쟁의 의인화로서의 여자가 아닌, "이름이 있고, 생각과 인생과 욕망이 있"(p134)는 여자들을 등장시켰다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 걷는 거다. 웨스트가 만난 그 여인처럼,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하지만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조차 사실은 우리 머리에 농간당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p139)


그외 마거릿 앤더슨, 모드 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서머싯 몸, 진 리스, 클로드 카엉의 삶을 색다른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며 저자는 말한다. 

"이 여정에서 나는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지 못했지만, 그만큼이나 넉넉한 것을 얻었다. 세상 속을 누비는 능력을 얻었다." (p374)

"집을 찾으러 나섰다가, 그 대신 세상을 발견했다." (p378)


책은 유머러스하다, 절망을 말할 때조차. 

페미니즘을 기술하는 유려하고, 세련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아가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찾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할 이야기들이다.

젠체도, 당위론도, 엄숙주의도 없다. 

삶의 모든 방식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 타인의 삶에서 선택지를 뺏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을 설파하고, 

연대를 말하지 않으면서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이토록 유려한 문장들이라니. 

그녀에게 감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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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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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기괴하다. 살인과 출산의 조합이라니.

탄생과 죽음, 아니 '죽임'의 조합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가 평범한 일상을 그리되 한 가지를 바꿔 모든 것을 바꾼 것처럼, 

이 소설 역시 그렇다. 

내게도 익숙한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직장생활, 한여름의 매미, 자외선 차단제. 

 다른 것은 하나, 살인의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뒤가 배경이다. 연애-결혼-섹스-출산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무너졌다.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생명을 낳는 좀 더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 요구된다. 

그렇게 도입된 것이 '살인출산 시스템'이다. 

'출산자'가 되기로 자청한 사람은 열 명을 출산하면, 한 사람을 직접 살해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획득한다. 

열 명을 탄생시킨 출산자에 의해 '망자'로 지목된 사람은, 한 달 뒤 출산자에 의해 합법적으로 살해당한다. 

망자에게 선택권이란 없다. 굳이 찾아준다면, 타살 되기 전에 자살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인류의 멸망을 막을 생명을 출산하는 것만이 최대의 윤리다. 사람들은 이 세계에 익숙해진다.

망자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은 유족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 대신 죽어 줘서 고맙다고. 

사람들은 망자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축복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 처절히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큰 죄를 지었어야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어도 이것이 정당하다고 결단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치정의 원한에 사무쳐,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누군가의 뱃 속의 태아였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죽어도, 이 세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망자의 죽음을 태연하게 말한다.

"새하얀 꽃이 웨딩드레스 같았잖아. 난 감동했어."(p68)


"(...) 망자의 유해는 누군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p57)

그들의 살의는 그토록 강력했을까. 열 번의 출산을 견디는 동안 끝내 유지될 정도로? 

열 번의 고통스러운 출산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던 살의를 증폭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혹은, 이미 살의라곤 사라져버린 시점에 전신마취한 망자가 앞에 놓여져 있으니,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리며 광기에 휩싸이는 건 아닐까. 

이것은 조작되고 의도된 광기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믿는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의 온기를 잃은 정부에 의해, 인간의 광기가 집단적으로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그래왔듯이.

"정부에서는 최대한 빨리 열 명 중 한 명이 '출산자'가 되는 사회를 목표로 삼고 있대. 그렇게 되면 '출산자'만으로 인구를 유지하는 게 꿈은 아닌 거지!"(p60)

출간되는 책들은 인간의 살의가 당연한 것이라고 암시하며, 출산자가 되길 종용한다. 

말하자면, 예고살인의 합법화다.


책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쿠코는 “특정한 정의에 세뇌당하는 건 광기(p49)라고 말한다.

"세상의 변화는 막을 수 없어요. 아무리 외쳐 본들 '갱생'되는 건 당신 쪽이에요.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싶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p90)

"세상은 긴 시간 속에서 그러데이션 돼서 대극으로 여겨졌던 두 색채도 결국은 이어지죠. 그래서 지금 서 있는 세상의 '정상'이 한순간의 신기루로 느껴져요."(p91)


이쿠코의 시각은 슬프게도, 변해간다. 

"우리는 이 얼마나 올바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가."(p116)

"설령 100년 후, 이 광경이 광기로 간주된다 해도 나는 이 한순간의 정상적인 세상의 일부이고 싶었다."(p118)


결국, 이 세계의 시스템에 회의적이었고 때로 혐오마저 느꼈던 이쿠코도 이 세계에 흡수되고 만다.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의를 버리고 세상의 일부가 되길 선택하는 사람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표제작 <살인출산> 외에도 <트리플>, <청결한 결혼>, <여명>이 실려있다. 

각각 세 사람이 연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상황, 커플 없는 가족,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가정되어 있다.

모두 현실을 비틀어 바라보게 하고, 결국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녕 옳은가? 확신하는가? 

세상에 널린 비합리성의 일부는 아닌가? 


<살인출산 - 무라타 사야카 소설집, 이영미 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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