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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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들에게 세상은 거대한 벽이었다.  식민지 체제, 봉건사상, 남성중심주의라는 억압적 질서는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김명순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윤심덕은 자살로,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p228, 편집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세계 일주기이다. 
육로로 시작하는 세계 여행은, 지금의 남북 정세와 맞물려 묘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도, 평범한 관광객으로서의 면모도 볼 수 있다.
나아가, 여성으로서,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엿볼 수 있다. 

미술품에 대한 자세한 감상이 나올 때는 지루해지기도 하다가, 
"너무 많아서 보고 나니 모두 그것이 그것 같다."(p154)고 할 땐 설핏 웃기도 했다.

예술가에게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반가움이다. 

다음과 같은 국가별 성격 분석(?)이 나오는데, 흥미로워지기도 한다.  
"영국인은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고상하고, 자제력이 많다. 규칙적이고 활동력이 뛰어나며, 의지가 강하다." (p166)
세계일주다 보니, 한 국가에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단시간만에 파악한 그녀 자신의 생각인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스위스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며 쓰기를,
"우리 것은 무엇이든지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작은 나라의 정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p63)
식민지 국민으로서 갖는 자괴감, 생각이 많아진다. 

그녀가 가장 사랑한 도시는 단연 파리였다. 
"화가가 있어야만 할 파리요, 파리는 화가를 불러온다." (p95)
파리의 가정에 머물렀을 때의 일을 말할 때는, 자신을 포함해 그 가족이 "여섯 식구"(p103)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든지 명랑하고 유쾌"(p109)한 이 가정의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로서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그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파리를 선망한다. 
당시 <삼천리> 잡지에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는, 그녀의 깨달음이 그대로 실려있기도 하다.

남편과 헤어져 여행을 하다가도 다시 모여 식사를 하면 행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힘든 여행의 피곤도 부부가 마주앉아 식사할 때는 멀리멀리 물러가고 단란한 행복이 있었을 뿐이다." (p148)
그러나 이 여행이 끝나고 얼마지 않아 그녀의 뜻과 관련없이 남편과 헤어졌다고 하니, 산다는 건 신비한 일 투성이다.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결국 행려병자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녀가 러시아를 지나며 불렀다는 노래 '오로라'가 실려 있는데, 그 때문일까. 가사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그 후반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나는 뜬 수풀
바람 부는 그대로
흐르고 흘러서
한없이 흘러
낮에는 길 걷고
밤엔 밤새껏 춤추어
말년엔 어디서
끝을 마치든" (p33)

완벽하게 개인적이기만 할 수 있는 글은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일기마저도, 시대를 내포하고 있다. 나혜석의 글 역시 그렇다. 식민지 조선의 국민으로서, 또한, 억압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으로서의 일기는, 시대의 아픔을 말한다.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 나혜석/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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