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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책 뒤표지의 문구처럼, "줌파 라히리식 가족 오디세이"가 펼쳐진다.
단편 하나를 넘길 때마다, 가만히 멈춰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아는가. 과연 알 수 있을까. 알아야만 할까. 모르기에 잔인하고 그래서 숭고한 것은 아닐까.
지금 이대로는 좋은가. 언젠가, 모두가 동등한 인류애의 가치 아래 가족은 해체되어야 할까. 과연, 영원히 유지해야만 하는 걸까.
모두의 근원이었던 가족.
그렇다하여, 마냥 사랑만이 가득하고 늘 서로를 환영하며 언제든 안기고 싶은 그 공동체가 가족이던가.
혹은, 비관과 우울의 씨앗, 모든 불행의 근원이 가족이던가.
모두가 맞고, 모두가 틀리다.
지나친 역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이 소설이 너무 좋다.
인간애로 무장된 집요한 관찰자 줌파 라히리. 인간과 가족을 말한다.
1부는 <길들지 않은 땅>, <지옥-천국>, <머물지 않은 방>, <그저 좋은 사람>, <아무도 모르는 일> 총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고, 2부는 《헤마와 코쉭》이라는 제목 아래 <일생에 한 번>, <한 해의 끝>, <뭍에 오르다> 각각 완결성 있는 세 편의 단편으로 모인 연작소설이다.
인도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까운 친구나 친척집에 방문해도 각 가정마다 다른 분위기를 실감하는데, 하물며 본 터전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정착지에 가서 맞닥뜨린 세계는 각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평생을 보아온 가족조차 알 수 없다.
<길들지 않은 땅>의 루마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생각하면 불편해진다.
아버지를 모시지 않는다는 죄의식과 동시에, 아버지를 책임져야 할까봐 두렵다. 미국인인 남편은 이런 루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루마는 고민 끝에 아버지께 함께 살자고 제안하고, 아버지는, 이런 딸이 부담스럽다.
딸이 그녀의 필요에 의해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거절하는 것에, 그 또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홀가분해진 지금의 삶이 좋다.
루마에게 아버지는 장남의 역할을 요구했던 사람이었고, 아버지에게 루마는 "의무감 없이 자라", "제 삶을 살"아온 딸이다.
이렇게, 서로를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존재, 그 생명을 만든 존재, 생명을 함께 탄생시킨 동반자까지,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일임을, 루마의 아버지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자신 역시 멀어진 자식이었고, 이것이 숙명임을.
<지옥-천국>의 부부는 어떠한가.
'나'의 엄마는 외로운 타지에서 만난 동향 사람 프라납을 사랑한다.
"이제 내가 봐도 엄마가 삼촌을 사랑하는 건 분명했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엄마는 프라납이 미국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분노를 표출하고, 아무도 모르게 미수에 그치고 말지만 분신자살을 시도할 정도.
이런 프라납의 존재를, 아빠는 좋아하는 듯하다.
"엄마를 인도에서 떠나게 했던 죄책감에서 조금 해방된 기분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엄마가 행복해 하는 모습에 다행스러워했을지도 몰랐다."
가족이란 이렇게 유지되는가.
<그저 좋은 사람>의 수드하에게 동생 라훌이 생긴다는 것은, 이런 의미도 있다.
"라훌 덕분에 부모님의 이상한 결혼 생활의 목격자가 한 명 늘어난 셈이었다."
벵골인 가정의 수드하, 라훌 남매는 부모님의 기대와 압박 속에서 성장한다. 수드하 역시 동생을 끔찍이 아끼며 자란다.
라훌의 알콜 중독 증상을 알게 되자, 부모는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 아들을 탓하는 대신 미국과 그 법을 탓한다.
이 맹목적 믿음은 부담인 동시에, 축복이다.
어디에서도 감히 요구할 수 없는, 근거없는 믿음.
결국 라훌이 퇴학당하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그는 모든 부모가 두려워하는 인물이 된다.
수드하는 어린 시절 함께 술을 감춰두고 마셨던 것이, 라훌에겐 놀이가 아니라 삶이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인생을 망쳐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죄의식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이 그의 인생처럼 박살나지 않은 게 미안했다."
아, 가족을 옭아매는 이 죄의식.
잠시 아이를 봐주기로 했던 라훌이 위험한 행동을 하자, 수드하는 남편에게 동생의 알콜 중독을 고백하고, 남편은 이를 숨긴 수드하를 향해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엄마는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인데, 대체 언제부터 세상은 이렇게 복잡해지고 마는가.
<머물지 않은 방>의 아밋은 둘째 아이가 생긴 후 결혼생활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립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 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한 것처럼 매일 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혼자 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뭍에 오르다>의 헤마는 "남편과 자식 없는 중년 여자로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결혼을 마음 먹는다.
약혼자를 두고 어린 시절 첫사랑을 만나지만, 결혼을 파기할 생각은 없다.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며 생각한다.
"그의 모습을 보니 혐오감이 느껴졌어. 내가 그를 배신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나 때문에 여기 왔고 앞으로도 살날이 창창하다는 사실이 끔찍했어."
곧 새 생명을 품은 헤마. 이렇게 저렇게, 가족은 탄생한다.
장미빛으로 그려내지 않은 가족이란 잔인할까.
<길들지 않은 땅>에서 루마의 아버지는 말한다.
"가족을 이루는 일 자체, 이 땅에 아이들을 낳는다는 자체가 때로 만족감을 주는 만큼 애초부터 어딘가 잘못된 일이다."
어딘가 잘못된, 어딘가 신비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신성한,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숭고한 것은 아닐까.
어디서도 일어날 수 없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그 곳. 세상의 시작.
<한 해의 끝>의 코쉭은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인생을 꾸려나간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마치 죽음을 연습하듯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저 좋은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어머니였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코쉭은 아버지를 부담스러워하는 루마가 됐을 수도 있으며, 동생에 죄의식을 느끼는 수드하가 됐을 수도 있다.
섬세한 줌파 라히리의 글들은 더없이 좋았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자 스스로도 "어렸을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찰하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그래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단다.
타고난 작가다. 무엇보다, 자기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글들이 너무 좋았다.
록산 게이는 옅은 피부의 혼혈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을 이야기한 바 있다.
문득, 내 자신이 품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정체성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