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개정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2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영화 <리플리>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르소설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조이스 캐럴 오츠로 처음 접했다면, 난 분명 이 분야의 열혈 독자가 되었을 거다.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 섬뜩함. 평범한 얼굴 속의 그로테스크함. 사건 자체보다 인간에 집중하게 한다.


총 11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하이스미스 스스로 어린시절 동화나 소설보다 정신과 환자들의 사례에서 더 강한 문학적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한다. 

무의식에 집중한 그녀는 '심리소설가'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고. 심리소설가, 딱이다. 

표제작을 비롯한 몇 편만 이야기해본다. 


<고양이가 물어온 것>

고양이가 물어온 사람의 손가락. 살인이 있었고, 범인과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나, 모두 침묵하기로 한다.

피해자는 "비굴한 사람이었던 것 같으니까요!"

편견, 편리한 자기 확신. 

뒤늦게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낄거라 짐작하면 뭐하나. 당신들의 죄책감은 어디에?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첫 단편부터 소름이 확 끼쳤는데, 이건 더하다. 

여유롭고 부유한 자들의 자칭 "우리 같은 특권층의 모임"이 있다. 

모두 에드먼드를 싫어한다.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담배를 끊은 것을 시기하고, 절제된 생활을 질타한다. 

가여운 에드먼드는, 자신의 고객들이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도 전화해대는 부류의 인간들이어서 불편해하나, 이 모임이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다. 아, 제발 벗어나!

그들은 짓궂다는 말로는 부족한 장난을 시작하고, 에드먼드가 걸려들자 "짜릿한 쾌감에 맛을 들이게 된"다.

마치 취미처럼, 에드먼드를 증오하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들. 

그들의 과녁이 된 에드먼드의 인생은 파국을 맞는다. 

"우리가 그를 죽였어." 생각하나, 딱히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인간들. 


인간의 대수롭지 않은 악의들. 집단 나르시시즘이란 게 이런 걸까. 죽고 사는 극단적 상황까진 아니었다 해도, 집단이 모여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수건 돌리기하듯 대상을 바꿔가며 벌어지던 학창시절의 은밀한 따돌림도. 애초부터 적었던 죄책감은 나누고 나눠 분산되어 사라진다. 아, 이 평범한 악마성. 돋아난 소름이 오랫동안 가라앉질 않는다.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

리는 욕설과 악담을 퍼부으며 자신의 인생에 개입했던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양로원에 돈을 보내는 것으로 경제적으로 부양한다. 

'노인들은 죽지도 않지.' 

갑작스레 알게 된 사실. 어머니는 벌써 몇 해 전 사망했고,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던 윈이 중간에서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며칠 뒤, 윈은 편지로 아들의 부고를 알린다. "자네가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할 것 같아서 알리네."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심정. 미안함과 원망. 

얼마 안 가 윈과 공범이었던 양로원 원장이 자살하고, 윈 역시 곧. 

양심은 누구의 것인지, 누구의 편인지, 죄인은, 범인은 과연 누구인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노인 입양>

선의로 양로원에서 노부부를 모셔와 함께 살기 시작한 매킨타이어 부부. 

노부부에게 가족이 되어줄 것을 상상했으나, 뻔뻔한 노부부는 그들을 마치 종처럼 부리고, 매킨타이어 부부는 분노하기 시작한다.

양로원도, 노부부의 가족도, 그들을 다시 받아주려고 하지 않고, 법적으로도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선의가 늘 선의로만 돌아오진 않는다. 

선의가 내 발목을 잡는 덫이 되는 순간도, 그 이후의 그들의 모습도, 모든 것이 섬뜩하다. 이런 충분히 가능한 범위내의 섬뜩함이란 하이스미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지.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옆의 사람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지젝은 히치콕 영화와 더불어 하이스미스의 단편소설을 정신분석의 주요한 독해 자료로 삼고 있다" 한다. 

하이스미스는 정신분석을 소설의 영감으로 삼고, 지젝은 하이스미스를 정신분석의 자료 삼고.

누가 소설을 단순한(?) 창작물이라 할 수 있을까.

나와 타인을 돌아보게 하는 하이스미스 소설의 매력에 듬뿍 빠져들 수밖에 없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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