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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평점 :
저자의 요주의 경고는 농담이 아니었다. 충격과 진정을 왔다 갔다 했다.
부제는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이다.
"악의 현상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명제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무지와 무기력의 수준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악의 심리학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또 나가야만 한다."
정확히 명명되어야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악"을 정신과 병명 중 하나로 확실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명조차 없다면, 의학은 악의 희생자들을 도와주는 수준에 그칠 뿐, 그들을 직접 다룰 수가 없으므로.
"악이란 인간의 안 또는 밖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생명성을 죽이고자 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악을 다루는 일이 왜, 얼마나 위험한지, 또 크게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여러분은 일단 마음속에 한 가지만 유념하면 된다. 자신에 대한 판단과 치유에서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의 판단은 안전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은 언제나 나에게로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우리의 최대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남 판단할 생각말고 일단 자기부터 돌아보자. 아래 사실도 주지하고.
"다른 사람들을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악한 사람들의 한 특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결함을 무마시켜야만 한다."
"악한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적 성격 장애의 한 특수한 변이로 분류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악한 사람들은, 일반적 성격 장애 질환의 공동 특징인 책임 기피와 아울러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1. 파괴적 행동, 희생양 찾기(책임 전가) 행동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며 그 양상은 대개 아주 미묘하다.
2. 비난이나 그 밖의 형태의 나르시시즘적 상처들을 지나치리만큼 못 견뎌하는데 대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 이미지와 사람들이 자기를 존중해 주는가에 대하여 유별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하여 생활 양식이 견고해진다는 장점은 있으나, 동시에 그것은 증오나 복수심을 부정하게 하고 위선의 정도를 심하게 만든다.
4. 지적인 속임수를 자꾸 쓰게 됨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가벼운 정신 분열증적 장애와 같은 모습이 점점 많이 나타난다.
그가 실제 겪었던 상담 사례들을 예시로 드는데,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소름끼쳐서, 웬만한 장르소설을 보는 것 이상의 섬뜩함이 있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정신과 환자들의 사례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 백분 이해되는 순간.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슬픈 사실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오히려 치료가 쉽고, 반대로 환자의 병이 심하고 부정직하며 사고의 왜곡이 심하면 심할수록, 치료는 어렵다고 한다.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이나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지 않기에 치료가 쉽지 않으며, 이따금 "치료 불가"라는 진단도 내려진다고.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악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감정은 혐오감이라고 한다. 즉각적일 수도 있고,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커질 수도 있다. 악이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위험해서다. 악과 너무 오래 마주하게 되면 그 악은 반드시 사람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므로, 저자는 특별히 해결책을 모른다면 그 악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혐오감 외 또 다른 반응은 혼돈이다. 거짓은 사람을 혼돈시킨다. 치료자 또한 여기 빠질 수 있고, 혼돈이 통찰될 수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악한 사람들을 반사회적 이상 성격자와는 다르다고 구분한다. 악한 사람들은 외형상의 도덕적 순결을 지킨다. 사회적 규범, 이미지 등을 잘 가꾼다. 그들의 선함은 모두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의 선함이다. 책 제목 그대로, "거짓의 사람들".
거짓은 악의 원인인 동시에 증상이기도 하다.
"악한 사람들은 투사와 희생양 찾기(책임 전가)를 통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김으로써 스스로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죄, 부적절성, 불완전성을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인식인 까닭에서다. 이로써 그들 자신은 고통이 없을는지 몰라도 대신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고통 유발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기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병 든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철저히 기독교적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다.
인간이 완벽히 자유로운 존재라는 저자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긴 힘들다. 모든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누릴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진 않을 뿐더러, 설령 완벽하게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란다 한들,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것이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하기엔 잔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을 해결책으로 보는 것엔 이견이 없다. 그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책의 뒷부분은 구마(驅魔)와 축사(逐邪)에 상당부분 할애되고 있다.
그는 구마와 축사를 악한 사람들에 대한 "가능성 있는 구원의 방책"이라고 믿고 있다. 신중한 독서가 필요할 듯하다.
꼭 '악'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정신 상담의 세계를 엿보는 것으로도 그 가치를 한다.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또한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