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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표제작 <웃는 남자>)에 수록된 작품중 김 숨의 <이혼>부터 리뷰를 남긴다.
제목부터가 이혼이니 설마 낭만적인 내용이 펼쳐질까마는, 책에 등장하는 사연마다 하나같이 가슴을 옥죄어온다.
『민정은 결혼도 하기 전에 이혼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 속의 남자는, 아버지였다.
등단을 해 필명을 가지며, 그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기 위해 그토록 시를 쓰고 등단이란 걸 하고 싶어했음을" 깨닫는다.
민정의 어머니는 평생을 남편에게 구타당하고, 스스로 이혼을 원하는지 아닌지 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한때 그녀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세상 모든 폭력의 근원이 아버지 같았다.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폭탄 테러도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이혼을 앞둔 어떤 여자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에게서 "어지간하면 참고 살라"는 말을 듣고 분개한다.
민정의 한 선배는, 이혼 때문에 해고를 당하고, 추문에 휩싸이고, 번번이 그 사적인 '이혼'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
어떤 목사의 아내는, 유방암에 걸린 것이 믿음과 기도가 부족해 벌을 받는 거라는 남편의 말 때문에,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을 것만 같은 공포에 휩싸이는데도 이혼하지 못한다. "모태에서부터 받은 신과의 이혼이기도 해서."
어떤 이는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워"진다며, 그러면 용서 못할 일도 없다며 결혼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후이혼"이 유행하기도 한다. 죽어서까지 해야하는 이혼이다.
민정은 그녀가 간절히 원할 때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지 않은 남편과의 이혼을 택하고, 남편은 그녀에게 죄책감을 떠안긴다.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그녀는 그를 구원할 신이 아니며, 그럴 의무감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고통을 떠안는다.
마치 저주처럼 그의 비난을 들은 후로 시를 쓰지 못하지만, 민정은 스스로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는다.』
민정의 남편이 그녀에게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한다. 마흔 일곱살 먹은 그가.
민정의 엄마는 딸에게, 너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 한다.
헛소리라는 걸 알아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을 옭아매는 죄책감들이 세상에 널려 있다.
세상의 모든 헛소리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그 헛소리들에 스스로를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
나를 구원해야 타인을 도울 수도 있다는 사실,
무엇보다 나를 구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이혼"이라는 다소 도발적 서두로 작가는 건네고 있다.
물론 나를 구하는 그것이 꼭 이혼만은 아니라는 것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