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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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 오리아나 팔라치.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그녀가 쓰지 않은, 그녀의 자서전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그녀가 생전에 쓴 기사, 칼럼, 에세이, 인터뷰 기사, 강연 원고, 편지, 일지 등 거의 모든 자료들을 망라하여 그녀의 행적을 좇고, 그 중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직접 기술한 내용만 실은 것이 이 책이라고 한다. 대단한 공이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탈리어판 편집자는 이 책이 그녀 삶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고 있다.


1929년생. 그녀의 유년기에는 전쟁, 무솔리니, 가난이 있었다. 무솔리니에 항거하는 피렌체의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를 이끈 지도부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소녀 시절부터 그 저항운동에 참여한다. 
전쟁을, 폭격을 두 눈으로 목도했고, 그때부터 반전과 자유를 신념으로 삼게 된다. 

의대에 입학하나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신문사의 리포터로 활동한다. 1967년엔 베트남 종군기자를 지원하고, 그 후 전세계를 누비며 기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무려 세 번의 총상도, 그녀를 막진 못했다. 

그녀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정확성과 사실성이 족쇄처럼 느껴졌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그녀는 글쓰기는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자신은 글쓰기를 싫어한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얼마나 마약처럼 글쓰기에 빠져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뜨거웠으나 고통스럽게 끝나고 만 사랑. 그녀의 고통이 생생히 느껴진다. 책 전면에 걸쳐 그녀의 인생 자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자유에 대한 투철한 신념 역시 인상깊다. 그녀는 자유는 꿈이지만 결코 단념할 수 없다고, 완벽하고 순수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 꿈을 좇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pp191-195). 본인이 쓰지 않은 자서전이라는 이 복잡한 작업을 출판사가 자진하게 된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나는 죽음을 증오한다. 나만큼 삶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삶을 즐기고 삶에 애착을 느낀다. 나는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 불행한 일을 겪을 때도 태어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p231) 

어느 분야거나 지난 세대를 풍미한 여성이라면, 여성으로서의,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거나 갖게 된 생각도 궁금할 테다. 이런 질문이 더이상 의미를 상실할 때, 그때 페미니즘은 역사의 뒤안길로 향하리라. 

그녀는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에 관해 글 쓰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변해간다. 그녀는 말한다. 무슬림 국가에서 남자는 얼굴을 가리지 않으며, 중국에서 남자는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오그라든 7센티미터의 발을 만들지 않고,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태형을 당한 일본 남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여성은 정의와 상식이 주는 안정된 균형 없이,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p83)

그녀가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일하러 나가! 일해!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p61)이라고 주문한 엄마. 팔라치는 엄마 역시 늘, 언제나, 많이 일했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묻는다. 엄마가 했던 건 일이 아니냐고. 엄마는 답한다. "아니었어. 그건 노예였어."(같은쪽)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p79)

스스로를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다"(p183)고 말하는 그녀. 결혼생활에 숨어있는 속박과 소유욕을 혐오하며, 절대 결혼한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고 당당히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모순이 보인다. 연인과의 동거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녀. 그것이 매우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바꿔 보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에 반감을 품으면서도,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문제는 짚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의아하다. 보다 복잡한 문제도 있다. 가령, "나는 모성의 개념에 집착한다." (p187)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은 아래의 문장. 
"내게 최고의 덕목은 남자다움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남자다움이고, 용기는 남자다움이다. 한 여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칭찬은 "당신은 남자다워요. 당신은 위대한 남자예요." 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대한 남자가 되기 위해 뭐든 할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삶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지만, 이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해서는, 여자는 영원히 하등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다고 해도, 그녀의 삶은 충분히 근사하고, 귀감이 될 만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유교의 영향일까. 
그녀 스스로 "내 인생은 언제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p157) 고 말하는 것엔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또한 그녀의 미국에 대한 선망에는 조금은 비합리적인 면이 보이기도 한다. 

가장 뜨악했던 것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다. 그녀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인정한다. 그는 착한 무슬림은 소수라고 말한다. 
"친구들이여, 이민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서양에 침투해서 유럽의 이슬람화, 즉 유라비아 공포로 몰아넣는 트로이 목마다. 이민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우리를 정복하고 말살하고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다." (p258)

완벽하지 않았다 해도,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자유에 대한 신념, 삶에 대한 열정. 여전히 빛난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행성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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