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웅진 세계그림책 257
앤서니 브라운 지음,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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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는 키가 컸어요. 나는 할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크지요. 할아버지는 생전에 아들 일곱, 딸 하나를 두셨는데 중간에 아들 둘은 먼저 보냈어요. 엄마 뱃속에 있는 내가 계집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셨지만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딸을 낳아줘서 고맙다고 했대요.

할아버지는 그리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가정적이지 못했고, 술을 좋아했고, 젊었을 때는 노름도 많이 했다더라 라는 이야기는 어른들의 대화에서 띄엄띄엄 들을 수 있었죠. 하지만 제겐... 가끔 하회탈같은 웃음을 보여주시고, 첫손녀라고 예뻐해주시던 기억들이 조각처럼 남아있지요. 술냄새는 좀 풍겼지만요.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가족 모두가 지켜볼 수 있었어요. 자식, 손주, 손녀들 모두가 보는 곳에서 할아버지는 서서히 숨을 거두셨어요. 저는 그때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생각보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느꼈어요. 할아버지가 아주 편해보였거든요.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좋아했어요.

여기 할아버지에 대한 그림책이 있어요.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형' 들 가족에 대해 세밀하고 풍부한 색채를 보여주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신간입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나와서 우리 할아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주름이 많아!!
우리 할아버지는... 상냥하고 포근해!!
우리 할아버지는... 반짝반짝 빛이나!!

아이들과 할아버지는 당연하게도 살짝콩 닮은 모습입니다. 우리 주변의 할아버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가지 모습이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그림을 만나 따뜻하고 포근해져요.

이제 나의 할아버지는 없고, 우리 아이에게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출산율이 줄어서 할아버지라고 불릴 날이 있으려나?? 생각하게 만들었던(^_^;;;;;) 그림책. 나의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하고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할아버지인 나의 아빠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선명한 색 대비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요... 역시 앤서니 브라운은 엄지척!!!

웅진주니어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책 속에는 할머니들이 진짜 많이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할아버지의 비중이 낮은듯하죠... 덕분에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생각해봤어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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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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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미발표 원고를 더해서 리커버 출간된『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금방 읽다가 다른 책도 읽어야지란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다 읽고 나니 문득 헛헛하고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런 글들을 조금 더, 몇편만 더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책 속에서 한껏 거닐었다. 엄마손에 이끌려 서울에 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뒷머리를 퍼렇게 드러낸 단발머리 소녀였다가, 모두가 기대하지 않는 마라톤에서 이름모를 여인에게 박수를 받는 꼴찌 주자였다가, 친구에게 너만 알고있으라고 들은 비밀을 모두에게 알려버린 서울 계집애였다가, 언제나 시골과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막상 마주한 시골의 날것에는 질려버리는 얼치기였다가, 늦은 밤 전등갓에다 스웨터를 씌우고 글을 쓰던 여인이었다가, 보통의 삶을 꿈꾸는 나였다가, 장발 단속을 피해 멋있다는 소리를 듣는 젊은 청년이었다.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보아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을 보며 소화가 잘 되는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문장들. 대부분의 글들이 내가 태어나기 전후, 어린이었던 시간에 쓰여진 듯 하였으나 그게 무슨 대수일까? 읽는 글마다 바로 작년에, 지난달에, 어제 쓰여진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나는 책 속에서 어렸다가 젊었다가 나이가 들었다가 했다. 풋내가 났다가 영글었다.

선생님의 시선은 그만큼 긴 시간을 거쳐 여기저기를 아우르고 있었다. 가까운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자식들, 남편, 손주들의 모습을 보며 가정과 교육에 대해 풀어나간 이야기들은 이웃과 세대, 사회전반의 모습에도 머물렀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사랑할때, 아끼고 예뻐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으며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좋다. 단정한 듯 하면서도 자유롭고, 고지식해 보여도 넓은 아량과 시야를 가지고 계셨고 또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가셨음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었거나 읽을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런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허나 언제든 이 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지금보다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이 책에 더욱 더 애정이 생길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상하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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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뭐 먹었냐고 묻지 마라 가족그림책 5
박티팔 지음, 보람 그림 / 곰세마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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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퇴근한 엄마와 쇼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 오늘 점심에 카레먹었는데 엄마는 뭐 먹었어요?" 아이가 묻자 엄마가 대답합니다. "엄마가 뭐 먹었는지 궁금하니?이야기가 긴데..." 하며 엄마의 점심시간을 이야기합니다.

회사에서 점심으로 밥을 적게 먹고 난 뒤 출출해진 엄마는 호두과자가 먹고싶어져요. 호두과자를 찾아서 산따라 길따라 나서서 호두과자의 고장 천안까지 갑니다. 드디어 호두과자집 발견!!! <다람쥐도 울고 갈 맛있는 천안 호두과자> 가게에 들어가니 주인장인 다람쥐가 일단 호두과자를 먹으려면 호두부터 재배해야 한다며 호통을 치기 시작하는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는 가게에서 엄마는 호두과자를 먹을 수 있을까요??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질문 중 하나... "점심에(혹은 저녁에)뭐 먹을까??" 혹은 "간단히 먹자(feat.호적메이트)"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첫째는 저한테 묻습니다. 엄마.. 내일 아침은 뭐야??그 질문을 받으면 어쩐지 한숨이 나요. 아오 엄마도 모르겠어... 누가 나 대신 밥 좀... 그놈의 밥 좀!!!! 진짜 지긋지긋한 끼니고민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러다 발견한 이 책!!!

글작가 박티팔님, 『파닥파닥 해바라기』, 『모두 참방』, 『완벽한 계란 후라이 주세요』의 보람 작가님의 그림이 찰떡으로 버무러진 책이에요. 제목은 뭐 먹었냐고 묻지 말라고 하지만, 대답은 잘 해주는 엄마의 흥미진진한 호두과자 탐험 이야기.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멈출 수 없는 웃음이 흘러요. 호두과자를 먹고 싶어서 천안까지 간 엄마도 찐인데 호두과자 가게 주인인 다람쥐도 찐입니다. 그렇게 온갖 노력을 해서 얻은 호두과자가 맛이 없을 리가 있나요? 가게 이름이 '다람쥐도 울고 갈' 만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요.

처음엔 몇번이나 웃으며 읽고 또 읽었어요. 호통치는 박명수처럼 계속 호통치는 다람쥐 주인도 너무 웃기고, 계속 시키는대로 열심히하는 엄마도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읽다 문득... 엄마의 이 이야기는 회사에서의 하루를 재밌게 아이에게 맞게끔 들려준 이야기는 아닐까?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어진 일을 해내고 해내는 하루. 다람쥐는 호통치는 상사였을까? 오가는 길에 마주쳤던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이었을까? 열심히 호두를 심고 가꾸는 엄마는 회사에서도 열심이겠지요? 그림책을 읽으며 혼자서 여러갈래의 상상에 빠져봅니다. 딸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다는 작가님, 많은 이야기 나누시고 또 재미있는 책 만들어주세요^_^

그나저나... 내일은 뭐 먹지요????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히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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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정경아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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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문화센터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보통 내 또래의 여성이라면 아이를 키우며 문화센터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아이와 어떻게든 잘 안 가는 시간을 떼워보려 난리 부르스를 췄던 지난 날들… 애도 나도 각종 동물 분장으로 노래 부르고 춤추며 영혼을 털었던 시간. 마치면 아이에게 비타민 사탕을 하나 까먹이며 ‘아 오늘 하루도 이렇게 잘 보냈구나(도대체 어디가…)’ 싶었던 문화센터! 일명 문센! ‘어른의 문화센터는 뭐가 좀 더 다를까’ 싶어서 펼쳐든 책 속에는 배우고 싶고 따라가고 싶은 일상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저자가 문화센터에서 중국어를 배워서 HSK4급 자격을 땄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언어를 배우며 좀 넓은 세상을 꿈꾸는 모습에서 아, 단지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나의 세상이 넓어지는 것이구나.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 할머니와 친구가 되기, 중국에 한 달 살기를 소원하기를 꿈꾸며 저자는 말한다. ‘노년에 스스로 찾아낸 횡재다.’ 횡재를 누리는 귀여운 어른의 이야기를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뿐인가, 춤을 추기에는 젊은 시절만큼 발목이 잘 협조해주진 않아 자신은 없지만 해 보기 전엔 알 수 없지. 꼭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다가 못 가면 그만(p.71)이라고 생각하는 쿨함… 맘에 들어....

68살, 아직은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의 시선은 할머니라는 단어에 정경아 선생님을 가뒀을지 모르겠다. 무임승차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몸은 한 군데씩 오래 사용했으니 고쳐달라고 하는 시기.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고 서운할 수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실시간으로 나이를 먹고 있다. 현명하게 인생 2막을 사는 방법을 책에서 읽으면서 주변의 어른들도 떠올려본다. 스타벅스 라떼를 좋아하시는 우리 시어머니도 생각난다.

이 책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과거에 어땠고, 고생했지만 지금은 잘 산다-식의 이야기가 아니라서였다. 고생담과 과거의 곡절이 있었다면 살짝 식상할 뻔 했다. 지금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만을 읽으며 상상해보는 나의 미래. 몇 살이 되든 배우는 사람일 수 있다면! 진짜 멋지지 않은가요♡ ‘읽는 내내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었으니 나는 미리 조금 생각해 볼 수 있겠지. 귀엽고 멋진 할머니가 되는 나를 상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책.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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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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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뒤로는 큰 산이 있다. 거실 옆쪽으로도 야트막한 동산이 있어 거실 창은 커다란 액자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우리동네를 보고 산만디(산마루?언덕이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라고 하지만 나는 아침에 커튼을 열면 보이는 나무가 반갑다. 나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무만 봐도 사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곳보다 계절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으며(나는 사계절의 밤과 아침과 새벽의 냄새를 기억하고 산다) 비라도 오고 나면 촉촉하고 진하게 풍겨오는 숲의 향기. 도심 한가운데보다 시원한 공기.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새의 노랫소리까지. 모두가 선물이 아닌가 싶다. 최근엔 새소리가 너무 듣기가 좋은데 무슨새일까? 꽃사진을 찍으면 꽃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처럼 새 소리를 들려주면 새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도 있으면 좋으련만...

저자는 일상속에서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명들을 지나치지 않고 또렷하고 선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한다. 이거 지나가다 흘러들은 내용인데 사실은 이랬었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글들과 애정을 가지고 그려낸 그림들. 덕분에 나도 단순하게 플라스틱을 덜 쓰면 되겠지, 용기 사용하고 텀블러 사용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하고도 작은 사계에 대한 기록을 읽어나가며 지구의 작은 동식물에게도 미안하고 또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잡초는 그냥 잡초가 아니고, 해충도 그냥 해충이 아니고, 목련은 내 생각보다 너무나도 오래 전부터 지구에 살았던 꽃나무였고, 내가 드라마를 보고 찾아갔던 마을의 팽나무 주변에 다듬어졌던 잡풀들 때문에 일찍 잎이 떨어진 팽나무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잊었던 나의 사계절을 다시 생각해봤다. 집 앞 강물이 겨우내 두껍게 얼었다가 쪼개지기 시작하는 그때 용감하게 타던 얼음배, 파꽃 위에 앉은 벌을 잡아보겠다고 집었다가 왕창 쏘인 손가락, 동네 아무데서나 따먹은 앵두, 쌀포대에 지푸라기를 가득 채워 타던 눈썰매까지... 내 아이들은 해보지 못한 진귀한 경험들이 나에겐 있다.

잊었다고 할 수도 있고 잊혀져 간다고 할 수도 있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우리나라와 지구. 예전엔 우리나라의 장점이 무조건 '뚜렷한 사계절'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로 이 책으로 사계절을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니... 그전에 작고 사소한 생명들에게 한번 더 시선을. 길가의 지렁이와 공벌레에게 인사를! (이미 둘째 등원길에 매일 인사하고 있음...) 사소한 생명체들이 우리 지구에 얼마나 큰 존재인지 몰랐던 이들에게 이 책을 슬쩍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 따뜻해...

+ FSC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에 콩기름 인쇄라니!!! ♡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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