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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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미발표 원고를 더해서 리커버 출간된『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금방 읽다가 다른 책도 읽어야지란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다 읽고 나니 문득 헛헛하고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런 글들을 조금 더, 몇편만 더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책 속에서 한껏 거닐었다. 엄마손에 이끌려 서울에 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뒷머리를 퍼렇게 드러낸 단발머리 소녀였다가, 모두가 기대하지 않는 마라톤에서 이름모를 여인에게 박수를 받는 꼴찌 주자였다가, 친구에게 너만 알고있으라고 들은 비밀을 모두에게 알려버린 서울 계집애였다가, 언제나 시골과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막상 마주한 시골의 날것에는 질려버리는 얼치기였다가, 늦은 밤 전등갓에다 스웨터를 씌우고 글을 쓰던 여인이었다가, 보통의 삶을 꿈꾸는 나였다가, 장발 단속을 피해 멋있다는 소리를 듣는 젊은 청년이었다.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보아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을 보며 소화가 잘 되는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문장들. 대부분의 글들이 내가 태어나기 전후, 어린이었던 시간에 쓰여진 듯 하였으나 그게 무슨 대수일까? 읽는 글마다 바로 작년에, 지난달에, 어제 쓰여진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나는 책 속에서 어렸다가 젊었다가 나이가 들었다가 했다. 풋내가 났다가 영글었다.

선생님의 시선은 그만큼 긴 시간을 거쳐 여기저기를 아우르고 있었다. 가까운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자식들, 남편, 손주들의 모습을 보며 가정과 교육에 대해 풀어나간 이야기들은 이웃과 세대, 사회전반의 모습에도 머물렀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사랑할때, 아끼고 예뻐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으며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좋다. 단정한 듯 하면서도 자유롭고, 고지식해 보여도 넓은 아량과 시야를 가지고 계셨고 또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가셨음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었거나 읽을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런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허나 언제든 이 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지금보다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이 책에 더욱 더 애정이 생길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상하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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