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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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뒤로는 큰 산이 있다. 거실 옆쪽으로도 야트막한 동산이 있어 거실 창은 커다란 액자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우리동네를 보고 산만디(산마루?언덕이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라고 하지만 나는 아침에 커튼을 열면 보이는 나무가 반갑다. 나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무만 봐도 사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곳보다 계절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으며(나는 사계절의 밤과 아침과 새벽의 냄새를 기억하고 산다) 비라도 오고 나면 촉촉하고 진하게 풍겨오는 숲의 향기. 도심 한가운데보다 시원한 공기.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새의 노랫소리까지. 모두가 선물이 아닌가 싶다. 최근엔 새소리가 너무 듣기가 좋은데 무슨새일까? 꽃사진을 찍으면 꽃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처럼 새 소리를 들려주면 새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도 있으면 좋으련만...

저자는 일상속에서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생명들을 지나치지 않고 또렷하고 선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한다. 이거 지나가다 흘러들은 내용인데 사실은 이랬었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글들과 애정을 가지고 그려낸 그림들. 덕분에 나도 단순하게 플라스틱을 덜 쓰면 되겠지, 용기 사용하고 텀블러 사용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하고도 작은 사계에 대한 기록을 읽어나가며 지구의 작은 동식물에게도 미안하고 또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잡초는 그냥 잡초가 아니고, 해충도 그냥 해충이 아니고, 목련은 내 생각보다 너무나도 오래 전부터 지구에 살았던 꽃나무였고, 내가 드라마를 보고 찾아갔던 마을의 팽나무 주변에 다듬어졌던 잡풀들 때문에 일찍 잎이 떨어진 팽나무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잊었던 나의 사계절을 다시 생각해봤다. 집 앞 강물이 겨우내 두껍게 얼었다가 쪼개지기 시작하는 그때 용감하게 타던 얼음배, 파꽃 위에 앉은 벌을 잡아보겠다고 집었다가 왕창 쏘인 손가락, 동네 아무데서나 따먹은 앵두, 쌀포대에 지푸라기를 가득 채워 타던 눈썰매까지... 내 아이들은 해보지 못한 진귀한 경험들이 나에겐 있다.

잊었다고 할 수도 있고 잊혀져 간다고 할 수도 있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우리나라와 지구. 예전엔 우리나라의 장점이 무조건 '뚜렷한 사계절'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로 이 책으로 사계절을 기억하게 될 지도 모르니... 그전에 작고 사소한 생명들에게 한번 더 시선을. 길가의 지렁이와 공벌레에게 인사를! (이미 둘째 등원길에 매일 인사하고 있음...) 사소한 생명체들이 우리 지구에 얼마나 큰 존재인지 몰랐던 이들에게 이 책을 슬쩍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 따뜻해...

+ FSC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에 콩기름 인쇄라니!!! ♡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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