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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평점 :
원효대사는 밤에 시원하고 달콤한 물을 마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자신이 일어난 곳은 무덤이었고
전날 밤 마신 물은 시체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그 광경에 놀라 구토가 나왔다.
어제 마신 달콤한 물에 대해 마음속에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자기 생각과 다르게 시체에 고인 물인 것을 알고 역겨워 했던 것이다.
원효대사는 여기서 곧 깨달음을 얻었다.
어제 마신 물과 오늘 본 물은 똑같고 그 본질이 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보는 자신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고통의 원인은 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번뇌는 그렇게 마음의 집착이 원인이 되며, 집착을 버리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이와 엄마가 있다.
엄마는 어린 자신의 아기가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쁠 수가 없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곁에 잠든 아가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해한다.
우리 이쁜 아가 잘잤니? 인사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흔들어 보니 몸에 힘이 없고 차갑다.
아가는 죽은 것이다.
엄마는 슬픔에 잠겨 결국 아기의 장례를 치르고 아기의 모든 물건을 태운다.
엄마는 그 후에도 집에 돌아오면 우리 아가, 집에서 혼자 심심했지? 하고 말을 건다.
그리고 아기의 영정사진 앞으로 가 허물어지듯 쓰러져 운다.
실제 아기는 사라졌지만
엄마의 마음 속에는 아기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엄마는 마음에서 지우지 못할 아가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아기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엄마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아가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통은 없을 것이다.
예 하나 더.
친구와 3시에 커피숍에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조금 늦어서 헐레벌떡 뛰었다.
3시 10분쯤 되어 미안한 얼굴로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친구가 없다.
친구가 커피숍에 있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점점 짜증이 난다.
만약 집착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친구와 3시에 만나기로 한적이 없었던 걸로 한다면.
나는 그냥 커피숍에 와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시키고 창밖의 풍경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번뇌없이.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그 사람에게 있었던 모든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은 없었어야 한다.
그 사람에겐 아무 약속도 없어야 하고,
아가도 처음부터 없었어야 하고,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부모도, 가족도 없어야 하고, 돈도 없어야 하고, 집도 없어야 하고..
모든 집착 가능한 것들이 없어야 한다.
그냥 그대로 존재할 뿐이더라도 내 마음 속에 없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
고통도 슬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과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번뇌하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번뇌하지 않는, 비어있는 마음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그냥 산 속에 혼자 살다가 비가 오면 맞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짐승에게 습격당하면 그대로 짐승의 먹이가 되어 죽으면 되는 걸까?
결국엔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마저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건 인간답지 않은 것 같다.
감정이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감정과 집착은 결국 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집착이 없다면 우리는 먹고 싶어하지도, 자고 싶어하지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착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때 마음에 상처 혹은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집착은 살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삶이 이어지는 동안 집착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집착은 끊임이 없고
그것이 욕심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놓는 순간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신이거나 혹은 죽은 것이다.
묻고 싶다.
어디까지 집착을 버려야 하는가.
모든 집착을 놓으면 결국 죽는 것과 다른게 무엇인가.
- 2011년 6월 3일,『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읽는 중에 -
이 책을 만난 기억은 특별하다. 합정동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길거리 책방 구경 중 이것 저것 펼쳐보다 우연히 이 책 목차를 펼쳤는데, 그 당시 마음 속으로 늘 질문하던 주제가 첫 장의 주제로 나와있던 것이다. 기대치 못한 만남에 조금 흥분한 마음으로 내용도 주르륵 살펴봤는데 무척 흥미진진했다. 나는 당시 연애가 생각만큼 잘 안 되어 깊은 고민에 빠졌고 스스로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에 이르러 멈춘 상태였다. 나는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이 책은 일단 그 문제를 같이 생각해준 동무가 되어 주었고, 사랑 외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줬다. 철학은 소크라테스나 칸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장난이라는 내 기존 생각의 틀을 깨주었고,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나만의 철학 하나 얻고 가는 것이 생각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에 걸쳐 품어야 하는 하나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라는 깨닳음을 준 첫번째 철학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