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취향집 - 늘 곁에 두고 싶은 나의 브랜드
룬아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향집투표적 소비라는 새로운 개념을 일본 불매 운동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투표적인 소비는 소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현대의 소비행태가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의견반영을 전제로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작가는 넘쳐나는 정보와 물건 속에서 자신이 소비하고자 하는브랜드를 골라냈고 하나의 컬렉션을 만들었다. 12개의 브랜드에는 오브제, 가구, 그릇, 서점, 잡지, 매트리스, 보자기 등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브랜드들의 공간으로 넘어가 브랜드를 만든 이들을 인터뷰하며 브랜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 브랜드가 고수하는 가치에 대해 묻는다.


책에 소개된 브랜드 중 이름이라도 알고 있던 브랜드는 앙봉꼴렉터’, ‘오롤리데이’, ‘웜그레이테일’, ‘티컬렉티브’, ‘이라선’, ‘어라운드’, ‘호호당으로 반은 넘는다. 이중 직접 소비해본 적 있는 브랜드는 일러스트 브랜드 웜그레이테일과 라이프스타일 잡지 어라운드이다. 먼저 웜그레이테일의 김한걸 일러스트레이터와 이현아 아트 디렉터의 인터뷰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이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이었다. ‘퀄리티에 대한 타협은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신뢰가 생겼다. 인터뷰어 룬아의 말대로 언뜻 보기에는 후루룩 쉽게 그린 것 같지만완성된 작품이 나오기까지 수십 번의 과정을 반복하고 하나의 선택을 내리는데 고민했을 흔적이 느껴졌다. 책상 앞에 놓인 양목장 엽서를 볼 때마다 이 종이 한 장에 축적된 고민의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처음 이 브랜드들을 접하게 된 계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오브제 편집샵 앙봉꼴렉터는 대표 강현교가 특별히 소개해 주고 싶은 물건으로 꼽기도 한 아르호이라는 덴마크 세라믹 스튜디오의 작품, 티 브랜드 티컬렉티브는 매거진 B와의 협업으로 새롭게 개발된 블렌딩, 한국 전통의 생활용품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호호당은 보자기 포장 서비스를 통해서였다. 게다가 앙봉꼴렉터’, ‘호호당의 샵은 집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 그 공간들을 무심히 지나쳤을 지난 시간들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서촌에 위치한 사진집 전문서점 이라선도 마찬가지였다. 대표 김진영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서점을 운영하며 사진을 직접 찍기도 하고 관련 공부까지 병행하는 그는 자신을 실무와 연구를 병행했을 때 에너지가 생기고 탐구 욕구가 솟는 사람이라 칭하는데 내가 지향하는 아이덴티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브랜드는 어라운드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함께했다. ‘어라운드는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들 개별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어라운드 출신의 크리에이터가 눈에 띄었다는 이야기는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잡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매력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곽재식이 들려주는 세균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는 다수의 SF 소설을 썼지만 글쓰기에 대한 책도 냈고 괴물 백과사전을 만들어 괴물 작가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다. 특히 이번 신간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를 읽기 시작하며 한국 괴물 백과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서문에서 작가가 소개한 이 책의 정체성 때문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근차근 이 분야의 기초를 쌓아가는 방식 대신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차례로 꺼내보는 식으로 글의 흐름을 잡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야기이고 또 그 이야기의 흐름이다. 이어서 또한 외국 학자들의 일화보다는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나 한국 연구자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담아보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하는데 책 전체에 걸쳐 한국의 전통설화나 주요 기록을 가지고 세균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내는 방식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도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 세균 박람회라는 설정을 통해 차례도 과거관’, ‘현재관’, ‘미래관’, ‘우주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뒤편에 실린 평면도를 보면서 마치 박람회에 참가한 기분으로 이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쉽게 풀어나간다 해도 과학지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작가가 설명했듯이 한국 중심의 사례나 이야기를 읽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일화는 1최초의 생명에서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생겨난 시점을 추측할만한 지표로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무늬를 들면서 한국 서해의 소청도에서 그 무늬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무늬의 근원은 파도나 바람이 아닌 세균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들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바로 세균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 돌 조각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작가가 권한대로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플라스미드라는 작은 DNA를 설명하면서 이 부스러기 DNA가 다른 세균의 DNA 일부를 빨아들여 자기 몸의 일부로 만들어내는 초능력자 같은 모습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뛰어난 가수와 입을 맞췄더니 그 사람도 갑자기 노래를 잘하게 되었다거나, 잘생긴 영화배우의 손톱을 구해서 먹었더니 먹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멋진 얼굴로 바뀌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말하는 비유는 곽재식 만의 유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챕터를 통틀어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여지없이 바이러스에 관한 것일 거다. 신기하게도 바이러스는 세균 때문에 사람이 걸리는 병이 아니라, 세균 자신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니며 바이러스는 세균이나 인간처럼 생물의 특징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책 전체에 걸쳐 다양한 문헌과 영화를 언급했는데 그 수많은 SF 영화보다 마지막 장인 우주관의 외계인이나 우주비행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SF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외계인이 생물을 퍼뜨리기 위해 지구로 세균(생명)을 보냈다는 생명탄생의 다양한 썰 중 하나가 자신의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조용하게 퇴장하기>에 활용되었다는 점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순간들은 박금산의 소설론이자 소설이다. 한권의 책한테서 두 가지 다른 성질의 글의 형태를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이 책이 가진 구성의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의 소설론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어떠한 이론이나 주장은 최대한 삼가 한 채 소설로서 소설의 단계를 설명한다. (흔히 말하는 소설의 5단계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위기의 단계는 빠져있다.) 그러니 이 책의 목차는 발단파트, ‘전개파트, ‘절정파트, ‘결말파트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각 파트를 소개하는 소설의 양이 일정치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발단에는 5편의 소설, 전개에는 9편의 소설, 절정에는 6편의 소설, 결말에는 5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이것은 실제로 하나의 소설에서 각 파트가 담당하는 분량의 차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발단과 결말은 짧고, 전개가 가장 길고, 절정은 강렬하되 길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면밀히 살펴보면 이렇게 다르게 조정된 각 파트의 소설들 중 하나의 소설이 여러 파트로 분할되기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단에 있는 어떤 개의 쓸모와 전개에 있는 개와 상사는 같은 소설이다. 절정의 매일 새롭게 퍽큐!’’와 결말의 그 남자가 국경수비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죠는 같은 소설이고 아마 발단의 정신과 상담까지도 포함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의 순간들은 구성 빼면 시체인 걸까? 그렇지 않다. 각 파트에 속한 소설이 다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이 스물다섯 편의 소설들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소설의 한 단계를 대변하는 부분으로서 존재하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록 파편화된 조각들을 맞춰가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이론 없는 소설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소한의 상황과 비유만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덕분에 플래시 픽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여섯 단어(“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로 이루어진 소설을 만들어낸 헤밍웨이의 기발한 일화를 빌어 짧게 쓰겠다는 다짐을 밝히던 작가는 전개 파트의 소설을 잘 쓰려면에서 장황한 성장소설을 쓴 제자를 혼쭐내는 교수로 분한 것 같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비유는 또 어떠하냐면, 각종 운동종목에 빗대어 한다. 테니스, 야구, 서핑으로 소설쓰기와 소설의 단계를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마지막 상대 타자를 세워두고 던지는 첫 투구. 그것이 발단이다.”, “소설의 전개는 서핑에서 보드 위에 올라서는 과정이다.”, “더 이상 진전이 있을 수 없는 상태! ! 서핑이나 스키다이빙에서 날아가는 것!”, “화려하게 파도를 잡은 후 마지막에 파도에 먹히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을 설정한 작가는 절정을, 승부를 지어놓고 첫 투구에 임해야 한다.” 맺음말의 제목은 테니스 코트에서 소설 창작하기이다.


이 책의 개성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소설론에 실질적인 정보를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구구절절한 일장연설은 줄인 채 딱 핵심만 짚고 실전으로 넘어가는 이 방식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것으로 또 하나의 소설론이 생긴 것이리라. 공을 치는 것, 서핑 보드 위에 올라가는 것, 라켓을 잡는 것. 이 느낌만 가지고 일단 글쓰기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작가는 위기의 단계를 빼놓았다고 말했다. 결국 작가는 스물다섯 편의 소설로 다져진 스물다섯 번의 실전감각으로 독자로 하여금 그 비워진 공간을 채워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주가 에세이에서 소설로 장르를 탈바꿈했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갔다. 나는 장혜령의 사랑의 잔상들을 읽을 때 에세이의 특성상 짧은 호흡의 글로 이루어졌을 거라 예상했음에도 글 자체가 상당히 파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처럼 글로 잔상을 스케치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진주는 하나의 주제를 위해 파편들을 잘 직조해낸 느낌을 받았다. 사진, 선언문, 편지, , 기도문, 뉴스 보도, 일기 등 다양한 자료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자전적 이야기를 상당히 현실성 있는 기록물로 만들어주었다.

 

사랑의 잔상들진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진주의 딸이 아빠에게 선물한 스누피 수첩을 다시 돌려받고 거기에 자신의 감상을 기록할 때 <쉘부르의 우산>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사랑의 잔상들에서는 우산 가게의 여자아이라는 에세이 한편을 통틀어 이 영화에 대한 경험과 이미지를 설명한다. 진주의 에필로그 당신은 뒷모습이고 풍경은 흐릅니다에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주시한다. 사랑의 잔상들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은 작가의 기억을 사로잡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우산 가게의 여자아이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은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챕터에 속한다. 비로소 사랑의 잔상들을 통해 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던 작가가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소설 진주』를 집필한 것 같다는 잔상이 남는다. 나는 진주를 읽음으로서 사랑의 잔상들의 일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소설가 배수아에 관한 것이다. 사랑의 잔상들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배수아의 이바나를 읽었던 때를 회상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2일 장혜령, 배수아, 최현지가 함께 하는 진주의 낭독극를 보러갔다. 낭독가 아니라 낭독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겨울(날짜도 28일이었다)에 배수아의 뱀과 물낭독회를 보고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형식의 낭독을 경험한 적 있었다. ‘의 이름을 붙인 진주의 낭독은 2년 전 뱀과 물의 그것보다 고차원적이었고 관객 참여적이었다. 독서를 체험의 방식으로 이끌어냈다. 이로서 진주3차원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진주를 읽을 때 낭독을 했던 부분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연기자였다.

 

진주진주는 작가의 아버지가 수감생활을 하던 곳이다. 껍질 속에 숨은 진주알을 꺼내는 것처럼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의미에서 진주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차학경의 딕테를 만나면서 그 비밀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기로 결심한다. 이방인으로 살았던 차학경의 삶이 운동가의 딸로 살았던 장혜령을 만나자 그녀는 받아쓰기를 시작한다. 자전거와 아버지, 공집합을 떠올린다. 기도하는 손을 떠올린다. 앉은뱅이책상을 떠올린다. 흰 개를 떠올린다. 엄마의 옷 수선집을 떠올린다. 엄마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교도소를 가던 그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혼자 비행기를 타고 버스의 종점에 있는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 이미지 사이를 르포가 채우자 하나의 목소리가 완성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떤 언어로 꺼낼 수 있나. - 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끈이론 -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끈이론으로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의 테니스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작년 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출간을 기점으로 김명남 번역가가 소개한 페더러 에세이의 명성에 대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글은 2006년 뉴욕 타임스에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페더러라는 제목으로 처음 실렸고 이후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로 재출간 되었다. 책 뒤편에 적힌 빌 게이츠의 테니스를 못 치거나 심지어 안 보는 사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면서도 테니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입장에서 쉬운 독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월리스 특유의 끝없이 이어지는 묘사와 때로는 본문을 위협하는 엄청난 양의 주석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읽다가 숨이 가쁘고 눈은 휘둥그레지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럽다가도 어떠한 지점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끈이론에 실린 5개의 글 중 첫 번째 토네이도 엘리에서 파생된 스포츠를 읽다보면 독서를 시작할 때의 차분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센트럴일리노이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테니스를 치던 어린 월리스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하학적 코트와 공의 궤적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각도에 대한 온갖 수학적 단상에 정신 못 차리게 된다. 두 번째 글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에서 월리스는 사람들이 스포츠 스타의 회고록을 찾는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한다. 그 뿐인가. 우리가 최상급 운동선수들에 매혹되는 이유에는 그들이 뿜어내는 초월적 아름다움이 있으며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 결국 이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선택, 자유, 제약, 기쁨, 기괴함, 인간적 완벽함에 대한 어떤 본보기로서 테니스 선수 마이클 조이스의 전문가적 기예에선 월리스에게 역설적인 매혹의 대상이 된 마이클 조이스를 중심으로 테니스 안의 사람들(선수, 코치)과 그들의 관계에 주목했다면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는 테니스 바깥의 풍경을, 그 산업을 관찰한다.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나면 서문에 등장하고 부제에 인용된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테니스를 향한 수식은 납득 가능하다.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느껴진다. 그 주제가 테니스든 랍스터든 문학이든 간에 집요함과 전문성으로 안전하고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인 영역으로의 침범은 위태롭기도 하다. 그는 중독을 다루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페더러 보다 페더러에 대한 그의 글에 더 매혹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남다른 재능과 홀린 듯한 열정으로 신체적 위업을 달성한 이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한다. 관객인 우리 또한 무언가에 홀린다.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저 모든 심오함과 친밀해지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우리는 이야기를 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