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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진주』가 에세이에서 소설로 장르를 탈바꿈했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갔다. 나는 장혜령의 『사랑의 잔상들』을 읽을 때 에세이의 특성상 짧은 호흡의 글로 이루어졌을 거라 예상했음에도 글 자체가 상당히 파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처럼 글로 ‘잔상’을 스케치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진주』는 하나의 주제를 위해 파편들을 잘 직조해낸 느낌을 받았다. 사진, 선언문, 편지, 시, 기도문, 뉴스 보도, 일기 등 다양한 자료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자전적 이야기를 상당히 현실성 있는 기록물로 만들어주었다.
『사랑의 잔상들』과 『진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진주』의 딸이 아빠에게 선물한 스누피 수첩을 다시 돌려받고 거기에 자신의 감상을 기록할 때 <쉘부르의 우산>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사랑의 잔상들』에서는 ‘우산 가게의 여자아이’라는 에세이 한편을 통틀어 이 영화에 대한 경험과 이미지를 설명한다. 『진주』의 에필로그 ‘당신은 뒷모습이고 풍경은 흐릅니다’에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주시한다. 『사랑의 잔상들』의 ‘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은 작가의 기억을 사로잡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우산 가게의 여자아이’와 ‘사라지는 여인의 뒷모습’은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챕터에 속한다. 비로소 『사랑의 잔상들』을 통해 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하던 작가가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소설 『진주』를 집필한 것 같다는 ‘잔상’이 남는다. 나는 『진주』를 읽음으로서 『사랑의 잔상들』의 일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소설가 ‘배수아’에 관한 것이다. 『사랑의 잔상들』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배수아의 『이바나』를 읽었던 때를 회상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2일 장혜령, 배수아, 최현지가 함께 하는 『진주』의 낭독극를 보러갔다. 낭독‘회’가 아니라 낭독‘극’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겨울(날짜도 2월 8일이었다)에 배수아의 『뱀과 물』 낭독회를 보고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형식의 낭독을 경험한 적 있었다. ‘극’의 이름을 붙인 『진주』의 낭독은 2년 전 『뱀과 물』의 그것보다 고차원적이었고 관객 참여적이었다. 독서를 체험의 방식으로 이끌어냈다. 이로서 『진주』를 3차원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진주』를 읽을 때 낭독을 했던 부분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연기자였다.
『진주』의 ‘진주’는 작가의 아버지가 수감생활을 하던 곳이다. 껍질 속에 숨은 진주알을 꺼내는 것처럼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의미에서 ‘진주’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차학경의 『딕테』를 만나면서 그 비밀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기로 결심한다. 이방인으로 살았던 차학경의 삶이 운동가의 딸로 살았던 장혜령을 만나자 그녀는 ‘받아쓰기’를 시작한다. 자전거와 아버지, 공집합을 떠올린다. 기도하는 손을 떠올린다. 앉은뱅이책상을 떠올린다. 흰 개를 떠올린다. 엄마의 옷 수선집을 떠올린다. 엄마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교도소를 가던 그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혼자 비행기를 타고 버스의 종점에 있는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 이미지 사이를 르포가 채우자 하나의 목소리가 완성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떤 언어로 꺼낼 수 있나.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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