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평점 :
곽재식이 들려주는 ‘세균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는 다수의 SF 소설을 썼지만 글쓰기에 대한 책도 냈고 괴물 백과사전을 만들어 괴물 작가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다. 특히 이번 신간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를 읽기 시작하며 『한국 괴물 백과』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서문에서 작가가 소개한 이 책의 정체성 때문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근차근 이 분야의 기초를 쌓아가는 방식 대신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차례로 꺼내보는 식으로 글의 흐름을 잡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야기’이고 또 그 이야기의 ‘흐름’이다. 이어서 “또한 외국 학자들의 일화보다는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나 한국 연구자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담아보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하는데 책 전체에 걸쳐 한국의 전통설화나 주요 기록을 가지고 세균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내는 방식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도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 ‘세균 박람회’라는 설정을 통해 차례도 ‘과거관’, ‘현재관’, ‘미래관’, ‘우주관’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뒤편에 실린 평면도를 보면서 마치 박람회에 참가한 기분으로 이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쉽게 풀어나간다 해도 과학지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작가가 설명했듯이 한국 중심의 사례나 이야기를 읽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일화는 1장 ‘최초의 생명’에서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생겨난 시점을 추측할만한 지표로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무늬를 들면서 한국 서해의 ‘소청도’에서 그 무늬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무늬의 근원은 파도나 바람이 아닌 세균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들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바로 ‘세균’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 돌 조각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작가가 권한대로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플라스미드라는 작은 DNA를 설명하면서 이 부스러기 DNA가 다른 세균의 DNA 일부를 빨아들여 자기 몸의 일부로 만들어내는 초능력자 같은 모습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뛰어난 가수와 입을 맞췄더니 그 사람도 갑자기 노래를 잘하게 되었다거나, 잘생긴 영화배우의 손톱을 구해서 먹었더니 먹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멋진 얼굴로 바뀌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말하는 비유는 곽재식 만의 유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챕터를 통틀어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여지없이 ‘바이러스’에 관한 것일 거다. 신기하게도 바이러스는 “세균 때문에 사람이 걸리는 병이 아니라, 세균 자신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니며 바이러스는 세균이나 인간처럼 ‘생물’의 특징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책 전체에 걸쳐 다양한 문헌과 영화를 언급했는데 그 수많은 SF 영화보다 마지막 장인 ‘우주관’의 외계인이나 우주비행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SF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외계인이 생물을 퍼뜨리기 위해 지구로 세균(생명)을 보냈다는 생명탄생의 다양한 썰 중 하나가 자신의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 속 <조용하게 퇴장하기>에 활용되었다는 점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