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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2021년 에드거상 수상
✔️인도 출신 영국 작가_디파 아나파라 데뷔작으로 뭄바이와 델리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당시의 경험과 인도에서 나고 자란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 인도 빈민가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어린이 실종사건을 9살 소년 '자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사회와 어른들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사라진 친구를 찾아 빈민가 구석구석을 다니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어른들의 초조한 단속에도 더 많은 아이들이 사라지며 상황은 점차 심각해진다.
🔖경찰은 우리에게 ‘봉사’하고 우리를 ‘보호’해야 하지만, 유령시장에서 내가 본 경찰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가게 주인들을 괴롭히고, 노점상에서 공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하프타 뇌물을 제때 바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경찰봉으로 등을 맞을 건지 불도저로 집을 쓸어버리게 할 건지 고르라고 한다.
🔖신이 주신 것이 결점일 리는 없었다. 신이 주신 것은 언제나 선물이었다. 옴비르는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일이 일어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 학교의 줄이 훨씬 덜 소란스럽고, 우리 학생들이 훨씬 더 질서 있게 행동한다. 우리 나이는 이 사람들 나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데.
🔖기차역에서 만난 소년들이 생각난다. 신들은 너무 바빠서 모든 사람의 기도를 다 들어주진 못한다던 구루의 말이 기억난다. 신들에게가 아니라 멘탈에게 기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를 병균 덩어리로 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아빠는 남들이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빠가 말하는 ‘남들’은 부잣집 사모님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빈민가에 살면서도 부자가 아니라고 우리를 쇼핑몰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경비원들을 포함한다.
🔖도대체 신들이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동네 경찰이 받는 것보다 더 많은 하프타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때리는 구루가 드린 푸자보다 더 성대한 푸자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푸자는 크고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정말 지겹다.
🔖 “그럼 저녁에 먹을 채소를 사러 나가는 건 괜찮고? 그땐 아무도 나를 납치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누나가 흥분해서 팔을 쳐들다가 내 얼굴을 치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물을 길으러 수돗가에 줄을 설 때나 쌀 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설 땐 아무 일도 없을 거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땐 납치될 거라는 거잖아. 그 말 하려는 거지, 지금?”
“말조심해.” 엄마가 누나에게 말한다.
“너한텐 돌봐야 할 동생이 있잖아.” 아빠가 말한다.
“돌볼 수도 없는 애를 뭐 하러 낳았어?” 누나가 묻는다.
🔖자이가 태어난 이후로, 루누는 자이를 혐오와 감탄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이는 백일몽과, 세상이 사내아이에게 허용하는 자신감 덕분에 불완전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듯했다. 반면 여자아이가 그런 자신감을 갖는다면 성격적인 결함이나 부모가 잘못 키운 증거로 여겨졌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인간은 누구나 가까운 사람을 잃게 될 거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넝마주이 대장이 말한다.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늙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고. 하지만 그들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깨닫게 될 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걸. 우린 이 세상에서 한 점의 먼지에 불과해. 햇빛을 받으면 한순간 반짝이다가 곧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먼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라."
🔖살인 사건이 이제 내게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스터리가 아니다.
< 디파 아나파라_작가에 대해>
넝마주이로 일하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독학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아이들, 종교적 폭력에 희생되어 학교를 떠나야 했던 아이들.
작가는 사회와 그 사회가 선택한 정부가 버린 아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유쾌한 유머와 신랄함과 에너지를 보게 된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하루에 180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지만 이런 실종 사건은 유괴범이 체포되거나, 혹은 잔혹한 범행이 세간에 알려져야만 비로소 뉴스에 나오며
뉴스는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범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실정이다.
인도에서 목격한 끔찍한 비극을 취약계층의 문제와 자주 동일시되는 인도인들의 정서와 가난에 대한 진부한 서술에 머물거나 불평등을 축소하고 싶지 않았던 작가는 많은 고민 끝에 '자이와 친국들'을 통해 그 길을 열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던 시기, 개인적인 시련을 겪으며 많은 물음을 안고 있었지만 결국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그 아이들이 통계수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맞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숫자 뒤에 숨겨진 그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을 이 책을 덮으며 답답한 가슴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사회나 어른에게 보호나 도움을 받지 못해 정령에게나마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만연한 곳에서, 어린 자이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인도의 적나라한 모습이 구석구석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진다.
그 모습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불편하고 답답해 불쾌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책을 읽는 내내 가지고 있어야 했다.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과 가정 내에서조차 성별에 의해 역할이 정해지고 차별당하는 모습.
다양한 종류의 불편한 시선과 편견, 혐오와 이해할 수 없는 늪과 같은 뒷말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자들, 소수자들의 모습에서 인도에 만연한 사회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계급과 계층, 여성과 종교에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척, 서로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사회의 모습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사건도 불편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아팠다.
계급으로 위에서 아래로 찍어내리는 모습도 존재하지만 그것보다는 일말의 사건들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이웃을 옆에서 바닥으로 밀어버리는 모습은 익히 알고있던 '신들의 나라, 신성의 나라 인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심각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단 한 권의 소설 속에 담아낸 작가의 방식이 굉장히 영리하게 느껴졌다.
'자이'의 시선으로 자이와 친구들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귀여운 행동들, 에피소드에선 손에 힘을 빼주기도 하고
사건의 이면을 맞닥뜨릴 땐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기도 하며 감정의 기복을 주어 시종일관 책에 몰입하게 한다. 이야기의 사건과 그 현실성에 아프고 무겁지만 책을 덮고 싶지 않을 정도를 내내 가지고 가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고 우리가 어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만들어 나가야 할 사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