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 땅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함께 모여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독서회 사건들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엔 조국 독립, 군부독재 시절엔 민주화를 열렬히 희망하면서 그들은 책을 읽었으리라. 오늘날에야 그그런 숭고한 목적 없이 오직 책 이야기만을 다루는 독서 모밈이 많지만,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독서 모임이란 당대의 권력자들 눈에는 불온성이 다분했다. 지금도 그런 모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책 읽기 모임과 《녹색평론》읽기 모임이 그렇다. 다만 지금은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을 뿐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은 오늘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책을 읽었던 독서가들을 통해 당대 독서의 정치사를 다룬다. 처음 보는 이름들도 있지만, 익숙한 이름들도 많다. 홍명희, 신채호, 김구, 나혜석, 이상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여성 독서가들도 많이 다루고 싶었지만, 시대의 한계로 남성 독서가들에 비해 사료도 부족하고, 아직 연구가 많이 부족해서 아쉬웠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책 차례의 말미에는 독서회 이야기도 언급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수평이 되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테다.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지만, 가부장제의 시대가 너무 뿌리 깊어서, 아직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내가 죽고 나서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바로잡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총 11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다독가 홍명희' 편에서 예상치 못하게 페미니즘과 만났다. 존경받는 민주투사,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젠더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한계를 보여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그저 <임꺽정>의 작가로만 알았던 그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어쩐지 반갑다. 한참 후대인 80년대 한국 남성들의 평균적인 젠더 감수성과 비교해도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간 것 같다고 보아도 비약은 아닐듯하다. (근·현대사를 좋아하는 역사전공자 출신으로서, 홍명희가 열렬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는 점은 부끄럽지만 오늘 처음 알았다.)

홍명희는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여성문제에 대해 상당히 깨어 있었다. 일단 그는 쌍둥이 딸의 대학 졸업논문을 손수 지도했을 정도로 여성 교육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그는 장녀 홍수경이 <우리 의복제도 변천에 관한 연구>를, 차녀 홍무경이 <조선 혼인제도의 역사적 考究고구>라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홍수경과 홍무경의 논문을 엮은 책인 《조선 의복·혼인제도의 연구》(을유문화사, 1948)에 실려 있다. 여성이 신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38

그의 칼럼 모음집인 《학창산화》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주목할 만한 책이다. 여기에 실린 <혼인제도>는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혼인제도들을 거론하며 ‘일부일처제‘가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폐해를 이야기했다. <신맬서스주의>라는 글을 통해서는 미국의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Margarret Sanger, 1879~1966)의 산아제한 운동을 언급하면서 피임의 타당성을 논했다. <차별>은 영국의 사상가 에드워드 카펜터(Edward Carpenter, 1844~1929)를 인용하며 생물학적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한 글이다. - P38

근우회가 창립할 때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식인종으로 풍자하는 글을 썼다. 그러면서 "우리 조선은 세계 선진국에 비하여 후진이라 모든 것이 남에게 뒤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운동은 더욱이 뒤지고 있는 것의 하나"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페미니즘의 역사를 상당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그가 언급한 크룹스카야(Nadezhda K. Krupskaya, 1869~1939)와 올랭프(Olympe de Gouges, 1748~1793), 그리고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페미니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 P39

크룹스카야는 소련의 페미니스트로 홍명희와 한 시대를 공유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러시아혁명을 이끈 레닌의 부인이기 때문에 언론 보도로 어느 정도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올랭프와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의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페미니즘 역사를 모르고선 언급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올랭프는 프랑스혁명기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1791)을 발표한 페미니스트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6주에 걸쳐 《여성의 권리 옹호》(1792)라는 책을 쓴 영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였다. 올랭프와 울스턴크래프트는 페미니즘이 태동할 때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인물들이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이들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독가로서 여성운동에 관한 책도 섭렵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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