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영어사전인 《메리엄 웹스터 사전》편찬자 중의 한 사람인 코리 스탬퍼가 쓴 에세이다. 영어는 주류 언어라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온라인 시대에선 영어사전도 예외가 아니구나. 언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사라지고 태어나는데 사전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니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언젠가 한국에서 종이사전은 국립국어원에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 정도만 남으려나. 코리 스탬퍼의 책으로 사전 편찬자의 삶을 엿봤는데, (세상에 만만한 직업은 없지만) 사전 편찬자들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듯하다. 나중에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을 읽고 후기를 쓰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긴 한데, 웹사전이 나오기 전부터 사전을 만드는 데 헌신한 많은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를 다루는 장인들이었구나.
오늘날 우리 업계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언어는 성장 산업이지만 사전은 사양 산업이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새 사전을 구입한 건 언제인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내가 남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면 ― 곧장 우리가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하루 종일 방에 앉아서 글을 읽고,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단어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직업으로 여겨진다. - P27
메리엄 웹스터에서 사전 편찬자가 되기 위한 공식 요건은 두 개뿐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공인 4년제 칼리지나 대학 학위가 있어야 하며, 영어 원어민 화자여야 한다. - P27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측정할 수 없고 명시되지 않은 조건이 또 있다. 무엇보다도 ‘슈프라흐게퓔sprachgefuhl‘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영어 화자들이 독일어에서 훔쳐온 이 단어는 ‘언어에 대한 감각‘을 뜻한다. 슈프라흐게퓔은 자꾸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미끄러운 장어이자, ‘planting the lettuce(양상추를 심다)‘와 용법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머릿속 기묘한 윙윙거림, ‘plans to demo the store(가게를 데모할 계획)‘이 쇼핑하는 법에 대한 친근한 시범이 아니라 대형 망치를 들고 패기를 발휘할 계획을 뜻한다는 걸 알려주는 눈의 경련이다. 모두에게 슈프라흐게퓔이 있는 것은 아니며 영어에 무릎까지 담그고 그 진흙탕 속을 헤쳐나가려고 애써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 P30
15년 이상 메리엄 웹스터에서 편집자로 일한 에밀리 브루스터는 모든 편집자들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맞아요,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혼자 칸막이 사무실에 앉아서 단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듣기만 해도 좋네요!" - P33
사전 편찬자들은 그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일생 영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사전 편찬업의 속성 자체가 이를 요구한다. 영어는 아름답고 당혹스러운 언어로, 깊이 잠수해 들어갈수록 공기를 마시러 수면까지 올라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요한다. 사전 편찬자가 되려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단어와 그것의 많고도 복잡한 용법들을 숙고하고, 그 용법들을 해당 단어가 글에서 사용되는 대다수 용례를 아우를 만큼 넓은 동시에 실제로 이 단어에 대해 구체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해줄 만큼 좁은 두 줄짜리 정의에 담아내야 한다. - P36
예를 들어 ‘tency‘와 ‘measly‘가 서로 다른 종류의 작음을 일컫는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무엇이 단어를 가치 있고 아름답고 혹은 올바르게 만드는지에 관한 개인의 언어적, 어휘적 편견을 제쳐두고 언어에 관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숙고 중인 단어가 영어에서 썩 내쫓아야 마땅한 역겨운 똥 덩어리더라도, 모든 단어는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기묘한 수도승처럼 속세를 등지고 전적으로 언어에만 헌신한다. - P37
옛 사전들을 들을 연구하는 한 학자 친구가 사전 편찬이 직업보다 소명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정말 그렇다. 사전 편찬자들은 매일 팔꿈치까지 오는 영어라는 탁류 속으로 몸을 던지고, 단어들과 씨름을 벌인 끝에 진흙탕에서 단어를 잡아 빼서 펄떡거리는 채로 페이지 위에 내던지고, 지치고 들떠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모든 작업은 회사 이름 아래 익명으로 출간되니 명성을 위한 일도 아니요, 사전 편찬에서 얻는 이윤은 센트 단위로 계산해야 할 만큼 보잘것없으니 부를 위한 일도 아니다. 사전을 창조하는 일은 마법적이고, 절망스럽고, 두통을 유발하고, 평범하고 속되며, 초월적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고 일컬어진 언어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 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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