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이것은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족 드라마. 어떤 소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이야기. 작가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슬아 가족의 일상을 작가의 유쾌한 문장으로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가족·노동·사랑·젠더·평등과 같은 주제들을 솜씨 있게 녹여냈다. 극적인 장치 없이도 그 모든 주제들을 일상 이야기 속에 담았다는 점에서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하긴 아무리 재미난 일도, 어떤 심각한 주제들도 대부분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에겐 일상이 아닌 것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 있고, 잠시 일상을 떠날 수 있어도 그걸 지속할 순 없으니까. 비일상이 계속된다면 그때부터는 더는 비일상이 아니까.


하지만 주제 의식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픽션을 많이 가미한 일상 에세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인 '일간 이슬아'가 작품 속 주인공인 슬아의 저작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니, 이슬아 작가와 슬아를 분리해서 생각하기란 좀 어렵지 않을까. 어째서 저자는 작품 속에서 출판사 이름만 '헤엄'에서 '낮잠'으로 바꾸고 인물 이름은 그대로 썼을까. 내가 모르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득 궁금하다. 그 점을 빼면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가족을 벗어난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어떨지 자못 기대된다. 



집안은 슬아 중심의 가녀장 체제로 재배치되었다. 오늘날 복희와 웅이는 슬아 밑에서 일한다. 출판사 업무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부부의 몫이다. 웅이가 주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복희가 부엌일을 책임진다. 복희의 월급은 웅이 월급의 두 배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야."
가녀장이 말했다. 이에 관해 웅이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 P40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 P40

그 말은 다사다난한 노동의 역사를 품고 있다. 한때 웅이는 자동차 부품 상가의 직원이었고 수영 강사였고 노가다꾼이었고 목공소의 일꾼이었고 벽난로 시공자였고 산업 잠수사였고 대리운전 기사였고 트럭 운전사였다. 그 모든 일을 몸에 익히자 웬만한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전에 웅이는 문학청년이었다. 복희도 슬아도 웅이 자신마저도 잊고 지내지만 말이다. 문예창작과 학부생으로서의 한 학기와 만능 노동자로서의 삼십 년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P51

슬아에게도 장군 못지않은 고유한 지랄성이 있기 때문이다. 룸미러에 비친 슬아의 얼굴이 무섭지는 않지만 슬아는 슬아 나름대로 예민하다. 하지만 사성장군을 모셔본 경력은 슬아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내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다. 웅이는 지난 세월의 모든 노동이 이렇게 귀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국 딸을 잘 모시려고 그 모든 일을 해온 것만 같다. - P52

슬아는 장군과 달리 자신의 신용카드를 차에 두고 내린다. 웅이가 운전병이던 시절 사성장군은 밥을 사 먹으라며 늘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만을 차에 두고 내렸는데, 돌아올 때마다 꼭 거스름돈을 확인하였다. 거스름돈을 정확히 돌려줘야 하는 웅이는 눈치가 보여서 늘 저렴한 메뉴를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끼니를 대충 때우고는 타이어와 보닛을 광나게 닦으며 장군을 기다렸다. 슬아를 기다리면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맘 편히 슬아의 카드로 밥을 먹고 간식을 사고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고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대기한다. 장군을 모시던 웅이는 이제 장녀를 모신다. 장녀와 맞담배를 피우면서 차를 몰고 퇴근한다. - P51

복희는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채로, 그러니까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 채로 서재를 떠난다. 서재를 떠나 부엌으로 간다. 저녁을 차릴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책을 읽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살아가야 하지만, 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한 끼의 식사는 한 편의 글만한 대접도 못 받는다. - P235

"‘엄마 손맛‘이란 말은 있어도 ‘아빠 손맛‘이란 말은 없어요. 집밥에 대한 향수도 대부분 ‘아빠 밥‘이 아닌 ‘엄마 밥‘에 국한되어 있고요. 한편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는 불러도 ‘고모‘라고는 절대 안 부르죠. 밥하거나 살림하거나 돌보는 여자들의 호칭은 모계 쪽 여자들과 더 유관한 느낌이야. 무의식 중에 고모를 이모의 우위에 두는 건 아닐까?" - P262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슬아가 아직 탐구중인 그 일을 미래의 아이는 좀더 수월히 해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 P307

복희가 기쁜 마음으로 무화과를 딴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 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 P308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 P308

슬아는 집으로 돌아가버린 어린 제자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 잘해보기 위해서라고. 다시 잘해볼 기회를 주려고 월요일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라고. 그러느라 복희는 창틀을 닦고, 웅이는 바닥을 밀고, 슬아는 썼던 글을 고치고 또 새 글을 쓴다고.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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