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중·고딩 시절 윤리와 도덕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만점 아니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정도였는데도 생각나는 여성 철학자가 없다. 그나마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유일하게 곧바로 떠올랐던 한나 아렌트(책에서는 '해나 아렌트'라고 나오던)도 내가 옛날에 혼자 책을 읽고 알게된 이름이었다.
이런 일이 단지 역사만의 일은 아닐 테다. 내가 어려서부터 알았던 여성 과학자도 퀴리부인 정도. 물론 해당 학문에 관심이 많다면 더 많은 이름을 알았겠지만, 왜 공교육에서는 여성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사를 다룬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까.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사가 필요하다.
플라톤(Platon)의 《국가(Republic)》를 페미니즘 철학을 다룬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플라톤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이상적인 도시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의 생각은 시대를 앞서갔다. - P6
플라톤은 소크라테스(Socrates)의 입을 빌려 ‘재능 있고 지적인 여성들도 남성들과 함께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플라톤이 제시한 ‘철인왕(Philosopher Kings)‘은 백성을 철학적으로 완벽하게 계몽하고 도시를 조화롭게 만드는 이상적인 통치자를 말한다. - P6
일례로 《철학: 100명의 주요 사상가들(Philosophy; 100 Essential Thinkers)》(2002)에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두 명의 여성만 등장한다. 《위대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부터 튜링까지(The Great Philosophers: From Socrates to Turing)》(2000)에는 여성 철학자가 단 한 명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 책은 현대 철학자가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남성 철학자만 다뤘다. 제목을 말 그대로 《철학의 역사(The History of Philosophy)》(2019)로 내세운 A. C. 그레일링(Anthony Clifford Grayling)의 책에서도 여성 철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 쪽 반에 걸쳐 ‘페미니즘 철학‘을 간략히 소개한 곳에서 여성 철학자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한 명만 등장할 뿐이다. - P7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불균형은 여전하다. 철학과에서 여성 교수가 절반을 차지하는 대학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015년 미국 상위 20위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2퍼센트에 불과했다. 철학의 일부 분야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여성 철학자가 단 한 명도 증가하지 않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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