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읽을 책을 빌리러 며칠 전에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도서 서가에 있어서 빌려왔다. 출간일 기준으로도 올해 6월이니 아직 나온 지 반년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책 제목은 '여성 철학사'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을 대강 봤을 땐 '여성 철학자'라는 제목이 더 정확하다. 원제도 『The philospher queens:철학자 여왕들』이라고 되어 있다. 



책에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저명한 여성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내가 여기서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철학자는 '해나 아렌트(보통 '한나 아렌트'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람이다)'뿐이다. 철학에 친숙하지 않은데도 남성 철학자들은 의외로 많이 알고 있다, 열 손가락을 두 번 꼽고도 모자랄 정도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모르고 이름만 익숙하단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익숙한 이름의 많음과 거의 없음은 천양지차다.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는지 책의 공동 저자들은 자신들이 만난 시민들이 여성 철학자의 이름을 단 한 명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례로 《철학: 100명의 주요 사상가들(Philosophy; 100 Essential Thinkers)》(2002)에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두 명의 여성만 등장한다. 《위대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부터 튜링까지(The Great Philosophers: From Socrates to Turing)》(2000)에는 여성 철학자가 단 한 명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 책은 현대 철학자가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남성 철학자만 다뤘다. 제목을 말 그대로 《철학의 역사(The History of Philosophy)》(2019)로 내세운 A. C. 그레일링(Anthony Clifford Grayling)의 책에서도 여성 철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 쪽 반에 걸쳐 '페미니즘 철학'을 간략히 소개한 곳에서 여성 철학자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한 명만 등장할 뿐이다."(7~8쪽)


비단 철학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남성은 기본값이고 여성은 직업 앞에 '여성'이나 '여'라는 수식어나 접두사가 붙는다. ('간호사' 같은 여초 직업은 대체로 여성이 기본값으로 쓰여서 여자 간호사는 수식어 없이 '간호사'라고만 부르고 남자 간호사는 '남자 간호사'라고 부를 때가 많지만 그것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 여성 철학자들만을 다룬 책을 '여성 철학사'라고 부른다면 남성 철학자들만을 다룬 책은 '남성 철학사'라고 해야 하는데, 어째서 아무 수식어 없이 '철학사'가 되는 것인지. 철학을 전공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런 마당이니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여성 철학자들을 거의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배경 속에서 나왔다. 내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한테도 어렵지 않아서 철학 혹은 여성 철학사 입문서로 적당해 보인다. 아직 우리에게 낯설지만 인류에 공헌해온 여성 철학자들을 이 책을 통해서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독일에 태어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쓴, 저서들. 『인간의 조건』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원서(번역본 포함)를 직접 읽어본 적은 없는데, 워낙 유명해서 주워들은 이야기들만 조금 있다. 인류사에 존재하는 모든 고전은 그걸 직접 읽은 사람은 별로 없고, 읽은 사람한테서 전해 들은 걸로 마치 그 책을 다 아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법인듯하다. 철학은 아니지만 나도 명색이 인문학 전공자(역사) 출신이니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미루어둔 지가 적어도 10년은 넘었다. ㅋㅋㅋㅋ 죽기 전엔 읽으려나. 입문서 ≫ 해설서 ≫ 원서 순으로 조금씩 가다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한나 아렌트처럼 이름이 곧바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유일한 한국의 여성 철학자는 '임윤지당'이다. 여러 철학자들을 함께 다룬 책에서 이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이름만 알 뿐이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남겼는지는 하나도 모른다. 임윤지당은 놀랍게도 조선의 성리학자다. 신사임당 모녀(신사임당의 딸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관련 논문도 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허난설헌처럼 시를 쓴 것도 아니고 성리학을 연구했다.


조선의 사대부 여성들도 성리학을 배우긴 했겠지만, '학자'라고 불릴 정도면 단순히 학문을 익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견해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여필종부를 강조했던 성리학에 무슨 매력을 느껴서 그렇게 깊이 공부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이달의 페이퍼 선정'으로 저번에 받은 적립금 3만원으로 무슨 책을 살까 아직 고민 중인데 얘도 일단 담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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