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과 강의는 같은 말일까? 범법과 위법과 불법은 같을까? 이처럼 모국어 화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비슷해보이지만 미묘하게 느낌이 다른 낱말들이 있다. 그 중에는 우리의 언어 직관으로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는 어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럴 땐 국어사전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글을 쓸 때 오직 우리의 직관과 독서 경험에만 의존해서 단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문 편집자나 작가가 아닌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책은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 어감 사전』이다. 저자는 30년 동안 국어사전을 만들어왔다는 안상순 씨다. 게다가『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동사의 맛』, 『끝내주는 맞춤법』등으로 우리말 지침서(?)를 많이 펴낸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니 더욱 신뢰가 간다.





오늘부로 정확히 두 달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신간 소식을 접하는 경로가 무지 다양해서 인스타그램에서 봤는지, 뉴스레터에서 봤는지, 알라딘 사이트에서 봤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처음 봤는지는 모르겠다. 『산책의 언어』는 크게 '하늘', '땅', '물', '식물', '동물', '날씨', '시간과 계절', '자연 속에서'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평소에 잘 몰랐던 자연의 이름을 모았다. 본문에서 소개하는 단어는 이 중에 한자어를 기반으로 한 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시피하며 대부분 토박이말이다.


앞에 소개한 『우리말 어감사전』이 설명문의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본 책에서는 에세이의 형식으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우리말 단어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준다. 낱말의 실제 쓰임새를 보여주려고 이야기를 일부러 만든 것 같긴 하지만, 단순히 어휘 뜻만 나와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이런 방식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바로 아래와 같은 방법이다.



솜사탕처럼 베우 물면 달 것 같고 몸을 던지면 솜이불처럼 푹신푹신하게 몸을 받쳐 줄 것 같은 구름도 있다. 뭉게구름이다. 뭉게뭉게 피어나 세로로 두껍게 발달한 뭉게구름은 그 모양을 따서 산봉우리구름, 솜구름, 더미구름, 적운으로도 부른다. 뭉게구름은 구름그늘을 만들어 더운 여름여행을 돕기도 하지만, 계속 발달해 큰 탑 모양으로 커지면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뿌리기도 한다. 소나기구름, 쌘비구름으로 부르는 적란운이다. (230쪽)


에세이 형식의 글이 끝날 때마다 사전 형식으로 어휘를 따로 정리해두기도 했다.



나는 달·구름·계절의... 그리고 그밖의 것들의 이름이 이처럼 다양한지 몰랐다. '해'나 '달'같이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 어휘의 확장은 곧 사고의 확장이라는데, 몰랐던 우리말 단어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나는 때때로 불거지는 문해력 논란이 불만이었다. 


사실 그것은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어휘력' 문제인데, 왜 논란이 되는 낱말들은 하나같이 한자어들만 있는지. 물론 내가 한자어나 외래어에 배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 국어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들이 우리의 국어생활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럴 필요도 없고 - 왜 문해력 논란의 주인공은 늘 한자어인지. 그냥 개인적인 푸념이다.


평소에 안 쓰는 말들이 대부분이라 여기에 있는 단어들을 기억하긴 힘들겠지만, 가끔 에세이나 독후감을 쓸 때 혹~~시라도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써먹어볼만한 말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우리말 어휘력 사전』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알라딘 사이트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주문했었다. 제일 앞에 소개한 『우리말 어감사전』처럼 유유출판사에서 펴냈는데 두 책이 같은 시리즈라고 한다. 『우리말 어감사전』이 우리말 단어의 미묘한 어감을 설명하고, 『산책의 언어』가 자연물의 이름(?)을 소개한다면, 본 책에서는 단어의 어원을 설명한다. 길게 주절주절거릴 것 없이 책의 일부를 살짝 인용해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술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작對酌을 즐겼다. '참작'은 이러한 대작 문화 산물이다. '참작'은 본래 술잔의 양을 헤아리는 것을 의미했다. 하여 '참량'參量이라고도 했다. 전통적으로 상대방에게 술을 따를 때는 일정한 양이 있었으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따라야 했다. 그러자면 술을 얼마만큼 잔醆에 따랐는지 헤아려야參 했다. '참작'이란 여기에서 유래한 말로, 오늘날 '참고하여 알맞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헤아림'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다. (23쪽)


위에 인용한 '참작'은 '정상참작'할 때 참작이고, '짐작'도 우리가 아는 그 '짐작'이 맞다. 평상시에 자주 쓰는 말인데, 음주 문화에서 비롯된 말인지는 몰랐다. 물론 '참작'과 '짐작' 두 글자에는 '술 부을 작(酌)'자가 들어가니까 한자를 알았더라면 의문을 지닐 법했겠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싶다. 내가 역사 전공자 출신이라 그런지 어원 이야기는 늘 재밌다. 우리가 공부한다고 영어단어를 외울 때 어원 중심으로 외우면 좋다고 그러는데, 우리말의 어원에도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궁금해하면 우리의 국어 생활도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아래에는 단어 관련 책은 아니지만, 내가 엄청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읽고 있는 맞춤법 책을 하나 첨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