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법정 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던 미하엘 콜하스, 309일간 크레인 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지도위원, 성폭행에 가담한 외손자를 고발하는 영화 <시>의 주인공 양미자는 모두 안티고네죠. 이들은 우리가 손가락질 받거나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을 죽음충동에 이끌려 해냅니다. 한마디로 미친 것인데, 미치지 않으면 주체가 될 수 없고, 윤리적이 될 수 없죠. - P60
한때는 문화적이고 문학적이 된다는 것이 진보와 해방을 의미했지만 점점 자본과 체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안타까운 것은 ‘문화의 덫‘에 걸린 인간은 분노와 슬픔에 둔감해진다는 거예요. 분노하고 슬퍼할라치면, 문화라는 바셀린 연고가 자본과 기술 문명에 얻어맞고 찢긴 상처에 살포시 내려옵니다. 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그 과정에서 ‘멘토‘가 되고 ‘셀럽‘이 되기도 하죠. 이를테면 연쇄살인마가 출현하거나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소재로 삼은 시와 소설이 등장할 뿐더러, 연극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지죠. - P117
제가 깜빡한 것이 있습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이제 선물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된다는 걸요. 잔뜩 기대에 찬 아이들을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에겐 성탄 전야가 또 다른 설렘으로 다가올 텐데 저는 너무 쉽게 나이를 먹어서 별 감흥이 없다고 말해버렸네요.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도 새길 듯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의 변화 같은 거 말이지요.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요. -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