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한용운 지음, 이성원.이민섭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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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은 명나라 신종(1573-1619) 때의 유학자 홍자성이 쓴 책이다.  홍자성의 행적은 몇 가지 인적사항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채근담》의 원전은 전·후집 합계 356장의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유학자가 쓴 책이지만, 내용 중간중간에 불교와 도교 철학도 가미되어 있다. 인문학도 출신답게 《채근담》 완역본을 읽으면 좋겠지만, 내 수준을 고려하여 해설이 있는 책이 좋겠다 싶었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것은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였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승려였으며,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바로 그 한용운이 맞다. 책의 원제는 《정선강의 채근담 精選講義 菜根譚》이다. 홍자성의 《채근담》을 한용운이 번역하고 해설을 달아 펴냈다. 하지만 한용운의 문장도 거의 한문으로 되어 있어 편역자들이 현대 한글로 다듬어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로  펴냈다고 한다.


옛날에 읽을 때는 별로 감흥 없이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나이를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그런지 다시 보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다음 구절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화를 내릴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복을 주어 교만하게 만든다. 따라서 복이 왔을 때에는 기뻐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함께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릴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화를 내려 경계하게 한다. 따라서 화가 닥쳐왔을 때는 근심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함께 보고 헤쳐 나가야 한다. (138쪽)


책에는 한용운의 해설이 달려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니 여기에 덧붙일 필요는 없을듯하다. 복이 왔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고 경계하고 몸가짐에 신중하고, 화가 닥쳐왔을 때라도 근심만 하고 넋 놓고 있지 말고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면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바르게 처신하며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해서는 안 된다. 큰 불이 쇠를 녹여도 맑은 바람처럼 의연해야 하며, 매서운 서리가 만물을 시들게 해도 부드러운 바람처럼 온화해야 하며, 하늘이 흐려지고 흙비가 내리는 상황이 되어도 해가 밝게 비추는 것과 같고, 사나운 파도가 바다를 뒤엎더라도 지주가 우뚝 솟아있는 것과 같아야 한다. 이와 같아야 우주적인 참다운 인품이라 할 수 있다. (132쪽)


이에 대해 만해 한용운은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바르게 처신하며 세상을 살아가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맑은 바람과 같이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며, 어떠한 황량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봄의 따뜻한 기운과 같이 화평한 기상을 가져야 한다고. 만해는 이 글귀를 번역하며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의연한 자세로 일제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독립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살펴보면 《채근담》은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논어》, 《맹자》, 《도덕경》이 각각 유가와 도가라는 사상을 담은 경전이라면, 《채근담》은 인생에 대한 잠언집이면서 처세·실용서에 가깝다. 다음 대목을 보자.


세상을 살면서 내 은혜에 감동하게 하는 것이 바로 원망을 사라지게 하는 길이며, 일을 당하여 남을 위해 해악을 제거해주는 것이 바로 이익을 거두는 기회이다. (110쪽)


현대인이 보기엔 이 또한 도덕 교과서 같은 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채근담》에서는 남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장의 잔재주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기보다, 비록 지금은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나중에는 큰 이익을 보는 행위가 진짜 처세 아닐까. 때로는 즉시 써먹을 수 있는 처세·실용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인생을 좀 더 길게 보면 당장의 필요를 넘어 몸과 마음을 닦고 더 큰 처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이 글은 브런치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lifeinreading/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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