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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손에 든 자 - 대학병원 외과의사가 전하는 수술실 안과 밖의 이야기
이수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6월
평점 :
📖「메스를 손에 든 자」는 대학병원 외과의사로 재직중인 이수영 교수가 쓴 의사이야기다.
▶️이 책의 부제를 정하자면 <인간의 희노애락>이라고 해얄것같다. 온갖 인간군상을 다 겪고, 생명의 처음과 마지막을 마주해야하는 의사의 숙명과 그 조차 한낱 인간임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알았을때, 그리고 인간으로 삶과 의사로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역력한 작가의 고백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우리가 알고있는 의사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의사의 모습을 모두 담아냈다. 특히 "내 환자"를 위해 자신의 건강도 기꺼이 뒤로 미루는 부모님 같은 마음을 드러냈을때 짠한 감동이 밀려왔다.
ㅣ왜 이 책의 마지막이 [우리, 애기]일수밖에 없었나
👉나는 책을 볼 때 차례를 한참 보면서 이 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이야길 담아냈는지 한참 본다.그런데 차례를 보던 중 "어?"라고 몇 번이나 차례의 앞 뒤를 뒤적였다. 차례가 한 장 더 있어야는데 빠졌나? 왜 마지막이 이거야? 우리 애기? 제목만 봤을땐 마무리로 짓기에 너무 힘이 없는듯 했다.
대망의 마지막 <우리, 애기> 내용도 짧았다. 실제 이 에피소드 읽기까진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마지막 문구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다'를 진짜 한참 바라보았다. 아. 과연. 이 책의 마무리는 이 이야기여야 했다 싶었다. 책 좀 읽었다고 '왜 이게?'라면서 단단히 벼르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우리, 애기>는 전공의도 한번 듣고 외우기 힘든 증후군을 가진 환자와 그 보호자의 이야기다. 서른 넘은 환자는 키가 130도 채 되지 않았고, 몸무게도 30키로그램이 되지 않았다. 어른이면서 어른이 아닌 기묘한 환자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수술을 시작하고 나서 예상보다 더 심각한 배 속 상태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보호자를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모든걸 설명했고, 보호자의 몇 가지 질문에 답을했다.
/p.265
어두웠던 어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담담해졌다. 나는 그 담담함이 이름을 외우기조차 어려운 증후군을 가진 남자의 삼십 평생과 함께해온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된 체념과 수용인 것 같아 보여 더 슬펐다.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던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교수님,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우리 애기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짧은 에피소드엔, 그 동안 보면서 느낀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아무 말이 없어도 환자의 상태만 봐도 그의 고통이 느껴졌고, 차라리 큰소리로 오열하고 의사를 원망했으면 할 정도로 담담한 보호자의 말과 행동엔 그 어떤 슬픔과 진한 아픔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온갖 환자와 보호자를 다 겪었을 의사가 어떻게 이들을 대하고, 환자를 오랜 기간 본 보호자의 인고의 세월을 보편적인 인류애를 넘어 같은 인간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아, 그래. 이 책의 마지막은 이 이야기여야 했다.
👉무엇보다, 책에 사진이나 삽화가 없이 오로지 빽빽한 글로 가득찬것이 좋았다.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었고, 덕분에 몰입도 쉬웠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생생히 전해져왔고, 그 덕에 냉철하고 권위적일것만 같던 대학병원 의사들이 좀 더 편하게 다가왔다. 신의 영역이라는 생명을 다루지만, 사실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점도 새삼 느꼈다. 의사라는 직업이 좀 친근해진것 같다.
▶️「메스를 손에 든 자」를 읽는내내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숱한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사람을 고치면 "의사니까 당연하지",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단 0.1%의 가능성에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결과가 잘못되었을때, 의사가 가지는 자괴감, 죄책감은 얼마나 클것인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 그 '무엇'은 환자의 건강, 보호자의 안위, 그리고 의사 스스로 <본전치기라고 할 지라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