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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행복한 중독 - 아이다에서 서푼짜리 오페라까지
이용숙 지음 / 예담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오페라에 관심이 생긴 것은 올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린 2003 여름 오페라 대축제에 참가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투란도트, 아이다 등의 이상흥행 열풍을 보며 뭐, 저럴 것까지야..했던 것이 사실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에, 별 것 없는 사랑타령.. 왜 그렇게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래하는지.. 대부분 뚱뚱한 남녀가 나와서 무슨 사랑.. 이런 식의 선입견을 가지고 오페라는 나와는 거리가 먼 예술장르이거니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나의 이 생각에 속으로 동감을 표할지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어쩌면 오페라에 중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이용숙씨는 알고보니 오페라 전문 연구자도 아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틈틈이 본 오페라에 중독되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이런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17세기 베네치아에 최초의 오페라 극장이 생겼다는 것이며, 초창기 진지한 내용 중심에서 점차 희극적인 내용으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등의 전문 지식에서부터 백여편의 유명한 작품 내용 설명까지, 정말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든 책인 것 같다. 게다가 각 장마다 오페라에 얽힌 에피소드 또한 간간이 실어놓고 있는데 이 것 또한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어나가는데 힘을 실어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작가의 맛깔스런 문체는 또한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국문학 전공자로서 이 분의 문장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간혹 외국문학 전공자들의 어색한 영어식 표현으로 씁쓸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용숙씨는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내용을 전개해 자꾸만 읽고 싶게 만드는 필력을 가진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음악에 관련된 책 대부분이 안고 있는 맹점.. 독자가 오페라 줄거리를 겉으로만 알고 에피소드 몇 가지만을 얻어 갈 수도 있다는 것.. 아는 척 하는 값싼 교양의 척도가 되는 책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독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된다는 사실.. 진정한 오페라의 맛을 음미하고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사실 설명 백번 듣는 것보다는 한 편의 짧은 오페라라도 감상하고 몸으로 그 분위기를 체험해 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려면 사실, 돈품도 들고..시간품도 들고.. 그게 안된다면 인터넷으로 유명한 아리아라도 찾아볼 수 있으니 손품이라도 들여야 한다. 독자의 이런 욕구에 맞추어 아리아 모음집 cd가 같이 있다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오페라마다 마음을 사로잡는 아리아를 1곡씩 선정해 놓아 하나하나 기대하며 인터넷을 찾아보는 재미도 나름대로는 쏠쏠했던 것 같다.
요즘은 아침마다 출근해서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있다. 사실 각 오페라의 사회상, 정치, 경제적 배경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오페라를 들으며 왜 이 배우가 이렇게 흐느끼며 노래를 하는지..혹은 환희에 가득차서 노래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베로나에서 본 투란도트 공연..홍혜경씨가 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했었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라보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쳤지만, 만약 이 책을 읽고 그 공연을 봤다면 좀더 깊이있는 감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에선 엄청난 규모의 오페라 공연이 계속 기획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에서의 오페라 열풍을 외국에서조차 의아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다.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학,음악,무대미술 등 여러 장르에 대한 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으로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아우러진 오페라를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결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니 나쁘게만은 보고 싶지 않다.
당신은 오페라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가? 단순히 교양을 쌓고 머릴 식힐 겸 이 책을 읽는 것이라면 과감히 손을 떼는 것이 좋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길..중독으로 이끄는 안내서를 잡고 있는 것이니, 당신은 지금 위험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