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독서의 기쁨 : 책 읽고 싶어지는 책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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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어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할 때마다 빠짐없이 써야 하는 항목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취미‘.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게 너무도 당연했지만, 깊이 있게 독서의 기쁨이나 행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긴 세월 나의 취미는 독서였지만 요즘만큼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적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딱 시의적절했다. 이제 무슨 책을 꺼내 읽어 볼까?

P.20
처음 내린 판단이 깨지는 건 꽤 즐거운 경험임에도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아주 간사해서 본인이 내린 판단을 쉬이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P.75
책을 많이 읽었을 때 삶이 바뀐다는 것은, 인생에서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사유 능력과 공감 능력을 증대시키고, 질적으로 훌륭한 차원의 쾌감을 주는 취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취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책을 즐기는 게 최고다.

P.91
"한국이 계몽이 필요한 사회인 건, 단순히 불의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왜 불의인지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리소스가 들기 때문이다. (…) [계몽은] 미개한 조국을 개조하자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복구하자는 의미이다. 나는 공공선에 대한 합의와 각자의 의견을 폭력 없이 조율할 수 있는 합리적 대화모델 없이 세상의 개선과 진보가 가능할 수 없다고 믿으며, 그런 규칙을 내면화하는 것에 대해 계몽보다 좋은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는 위근우의 말에 공감한다. 무엇보다, 그가 이 까다롭고 힘든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P.109
과학은 한계를 안고 있다. 과학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연구 이후 수많은 추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어린이가 이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성공 신화뿐이다.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어땠는지, 형제 관계는 어땠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P.124
서정주도, 백석도, 기형도도, 박준도, 언어에 자신의 일부분을 기꺼이 새겨둔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충분히 쉽고, 말맛이 좋게 잘 조탁되어 있다고도 생각한다.
방의 책장에는 서로 다른 시인이 쓴 스무 권 정도의 시집이 꽂혀 있다. 이 정도면 열렬한 시 독자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멍하니 앉아 시집을 들여다보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삶의 빈 자리마다 시의 언어가 놓여있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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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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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번째 글)

이 책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 사람이란 고작 세제가 녹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고, 치열하게 사랑하고, 끝없이 갈구하며 사는 존재라는 걸까. 너무도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한 것임을 알리고 싶은 걸까. 그 짧은 시간, 충분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자는 것일까. 시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스며들 것인지 내린 결론이 비현실적일지라도 최소한의 가능성을 믿자는 것일까.

P.179
"너희 도움을 받아서 병원에 실려 갔다 온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 그래도 흔적이 남는다고 해서 터진 자리에 바늘 한 번 대지 않고 내버려두고 싶진 않아, 여건만 허락한다면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싶고, 옹색한 생활의 굴곡을 감당하고 싶어. 서로 비슷한 일과 사물에서 긴장을 느끼고 그것을 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싶어. 슬픔이나 근심의 타이밍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감의 여지만은 남겨두고, 어쩌면 계산되지 않는 그 다름이야말로 함께하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도 있겠지. 같은 날 같은 시에 나란히 죽는다는 꿈은 비현실적인 낭만이지만. 적어도 서로 오랜 시차를 두지 않고 사라지는 게 좋겠어. 지금까지 말한 것들 가운데 대부분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가능성을 버리고 싶지는 않아."

P.184
봐라, 네 안에는 물리학과 생물학뿐만 아니라 화학 천문학까지 들어 있지. 너는 지금까지 사람이 밝혀낸 한도 내에서 우주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P.203
그를 온몸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의 짐을 나눠 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에 대해 궁금해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림 반 푼어치 얄팍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P.249
아이가 훗날 자라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대도, 그는 괜찮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완전히 멈출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 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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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광원‘이라는 보육 시설을 중심으로 엵힌 인물들이 하나둘 만나면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부분들은 추리 소설과 같은 맛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인물들을 모두 연결해 놓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들이 하나같이 우연에 의지하여 인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아쉽기도 하다.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각 장의 인물들은 인생의 기로에 서서 진지하게 몇 번이고 자신을 돌아보며 편지를 써 내려가고, 나미야 잡화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간다. 그렇기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구태여 밖으로 내뱉지 않았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작가의 창작 의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주니 오히려 아쉬웠다.

하여튼 내 곁에도 나미야 잡화점 같은 익명 상담소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보며...

P.209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생선 가게를 운영하겠다면 얘기가 달라져. 하지만 지금 너는 그게 아니야. 그런 자세로 가게 물려받아봤자 너, 생선 장사 제대로 못해. 몇 년쯤 해보다가 역시 음악을 할 걸 그랬다고 징징거리는 반편이가 되겠지."
"그럴 일 없어."
  "뭐, 훤히 보인다. 변변히 생선 장사도 못하면 그때 가서는,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별수 없이 가게를 물려받았다느니, 집안을 위해 희생했다느니, 이래저래 변명을 둘러대겠지.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고 매사 남의 탓으로 돌릴 거라고."
  "여보,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당신은 아무 말 말고 있어. ……어때, 할 말 없지? 내 말이 틀렸으면 말을 해봐."
  가쓰로는 입을 툭 내밀고 아버지를 보았다. "집안도 좀 생각하겠다는데, 그게 잘못이야?"
  아버지는 흥 하고 코를 울렸다.
  "그런 훌륭한 말은 뭔가 한 가지라도 성공한 다음에 해야지. 너, 지금까지 음악 하면서 뭐든 하나라도 성과를 냈어? 아직 아무것도 못했지? 부모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한 가지에 몰두하기로 결심을 했으면 그만한 것을 남기라는 말이야, 내 말은. 그것도 제대로 못한 사람이 생선 가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거야말로 크게 실례되는 소리다."

P.237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251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P.301
"다른 편지도 그래. 대부분 내 답장에 감사하고 있어.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가만 읽어보니 내 답장이 도움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야. 스스로 착실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내 답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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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카페 보문을 부탁해요 1~2권 세트 - 전2권 - 완결
심우도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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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골라 읽는 책들을 보니 공통점이 있다. 큰 굴곡은 없어서 자칫 지루해 보이지만, 소소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들이 꽤 많다는 거. 특히 ‘사람 간의 관계‘ 이야기에서 꽤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걸 보면 내가 나이를 먹으며 경험치가 쌓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막연히 ‘카페 보문‘이 제주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보문‘이 지명일 거라는 추측은 맞았지만 ‘서귀포 보목‘을 ‘보문‘으로 착각하고 제주도인가보다 한 미련함. 뭐, 틀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주도라 생각하고 본 덕에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레 여겨졌으니 ‘좋은 착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카페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이 구성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따땃하다. 그리고 선화와 정우에게 꽉 막힌, 행복한 결말이 찾아온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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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리고 벤
미바.조쉬 프리기 지음 / 우드파크픽처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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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번을 다시 들춰 보게 되는 책. 같은 공간을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 부분들을 뒤늦게 알아채고야 말았다. 저자의 세심함이 참 좋다.
벤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 그림자에 잠시 빛 한 줄기를 드리우게 되는 할아버지. 아마 할아버지는 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라고 믿고 싶다. 흔하디 흔한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너무도 무거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티끌과 같이 작은 무언가만으로도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라도,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도 있을 것이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삶의 의미를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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