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미래와 숨막히는 망상만이 내 하늘위에 가득했던 그 시절

어느 해 여름엔가 나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를 무심히 지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힘겹게 쓸어내리고 허공으로 머리를 젖혀 가쁜 숨을 내쉬는 그 찰나,

나는 보았다.

널찍한 초록빛 나뭇잎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눈부신 푸른 광선을...

플라타너스여,

너는 그때 아무 말 없이 내 조각난 꿈을 은빛 별들로 꿰맞추어 주고 있었다.

몽롱한 시야 깊숙히 넘실대는 초록 희망을 두눈 가득 담고서  

비로소 나는 너를 노래했단다.

플라타너스!

 

 

::: 김현승, 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놓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여전히 아픈 그 시절...

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뜻밖에 찾아온 환희의 순간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 본적이 있다.

사는게 버겁고 걷는 것 조차 힘에 부치던 그 여름 날 오전,

나는 아찔하고 숨막히는 태양빛을 피해 플라터너스 나무 아래로 슬그머니 기어들어가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널찍한 플라터너스 잎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가 마냥 고마웠던 그 때 나는 축늘어진 어깨를 펴고 하늘 위로 뻗어오른 플라타너스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그 때였다.

내 손바닥보다도 훨씬 큰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 사이 그 미세한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빛,때마침 불어오는 살랑바람에 한바탕 스스스스 요동을 치는 나뭇잎 그 끝에서 터져나오는 은빛 햇살...

순간

번뜩이는 내 눈

이내

미어져오는 내 가슴

그랬다.

꿈을 포기하기엔

눈부신 하늘빛이 너무도 푸르렀고

그 하늘을 향한 초록빛 나뭇잎이 너무도 반짝였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그 하늘을 올려다 볼때 가장 근사하게 보는 방법 하나:

안경을 써야 모든게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는 제게 시력이 나쁜 게 고마웠던 순간이 딱 한번 있었습니다.바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 순간이지요.

나뭇잎의 초록빛과 그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의 푸른빛과 그 하늘의 아침 햇살을 흠뻑 머금어버린 나뭇잎 끝에서 터져나오는 은빛이 서로 교차가 되고 스르르 번지어 얼마나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내던지요...안경을 쓰고 계신 분이라면 안경을 벗고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제가 했던 이 말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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