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남부시장은 벌써 여름이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종묘사의 고추,가지,상추,배추 모종은 좁은 시장길에 늦봄의 싱그러움을 더하고, 아침부터 떡집 찜통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든든해진 내 배를 아랑곳 하지 않게 만들고 달콤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특히 팥고물이 수북하게 쌓인 찹쌀떡은...!

철물점 모퉁이를 돌아 허름한 길가로 들어서면 군데군데 늘여선 대포집의 찌리한 냄새가 날 지금도 반긴다.탁주의 시큼한 냄새와 시어터진 김치쪼가리의 냄새는 그 시절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가던 내게 역겨운 고문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나만이 알고,나만이 기억하는 그윽한 향기가 되어버린듯 하다.

백미터 전력질주에 성공하고 왼쪽으로 꺽으면 대성상회에서는 매퀴한 고춧내가 다시한번 내 코를 자극한다.병충해입어 군데군데 누렇게 뜬 고추가 몇 평남짓한 가게를 가득 채우고 그 안에서는 아침부터 할머니들께서 고추 꼭지를 따신다.라면 스프에 사용된다는 항간의 소문이 틀린말은 아닐 듯 하다...

몇 걸음을 더 전진하면 오른쪽 옆으로 삼원 한약방 담장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붉은 담벼락 만큼이나 지금도 삼원 한약방집은 내게 자줏빛 금지된 성(紫禁城)으로 기억된다.수년만에 삼원 한약방 앞을 지나가보니 반갑게도 온순한 그 집 누렁이가 이른아침 나른한 기지개를 태평하게 펴고 여전히 짖지도 않은채 동네를 어슬렁 거린다.행여 삼원 한약방의 굳게 닫힌 나무 대문이 열릴때면 슬그머니 그 집 안 마당을 훔쳐 보는게 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었다.여전히 그 집 뜰은 교동의 아침 햇살을 모조리 빨아들인 듯 찬란히 빛나고 있었으며 그 특별한 햇살아래 올 봄에도 그 댁 철쭉은 자지러지게 피었더랬었다.

한약방집 길다란 벽을 따라가면 삼성전당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채로 침묵하고 있다.언제고 열린적이 없는 이층집 창문,그 창문 밖에서 교교하게 빛을 비추이는 가로등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전당포 이층 창문에서 가로등까지 제법 커다란 거미줄이 그 시절 촘촘하게 엮여있었고 그 허공속을 내 엄지 손가락보다 더 큰 거미가 전세내고 있었다.밤새 비가내리고 아침에 눈부신 햇살이 비추이는 날이면 거미줄에 대롱대롱 맺힌 물방울을 첨벙거리며 간밤에 걸려든 파리 한마리를 먹기 위해 느긋히 이동하는 거미를 보면 아찔했던 순간도 내 기억의 한켠에는 지금도 존재한다.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전당포집 옆에는 갈색 문틀로 된여닫이 유리문의 담배가게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담배 꽁초 하나 그 앞에서 찾아 볼 수 없다.인생부동산이란 빛바랜 간판만이 무심히 걸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늘 굳게 닫혀 있던,운동장으로 난 학교 회색 철문은 이제 활짝 열리어 있고,그 시절 그 철문 기둥에 "봉"이 되었던 나의 소시적 추억은 잊혀져 가는 그리움이 되어 불현듯 오늘 아침 등교길 내 마음을 애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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