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의 사회적 고독은 정신건강에 필요하다. 혼자 있기만 하면 어쩔 줄 모르고 고독하다고 호소하는 것은 의존성의 성격이며, 일종의 정신적 허약증을 의미한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잘 때까지 언제나 누구와 같이 있어야 하고, 놀기도 같이 놀아야 하고, 공부도 같이 해야 하고, '사색'도 같이 해야 하고, ... 하는 것은 도리어 하찮은 일에서도 자아를 포기하는 허약증이다. 사람은 가끔은 심산유곡에서 며칠을 혼자 보내며, 혼자 몇 날 몇 달을 어떤 일에 집중 몰입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정신건강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본다면, 가끔 세속을 떠나 산수에서 홀로 있음을 즐기는 동양의 군자의 모습이, 혼자 있는 것을 곧 정신분열적 자폐증 증세라도 되는 듯 기피하면서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를 즐겨야 하는 것으로 아는 서양의 조광증적인 사교인보다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병적인 고독도 있다. 그야말로 어떤 정신분열적 자폐증이나 우울증 때문에 병적으로 스스로를 밖으로부터 폐쇄하고 이웃도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멀리하면서 스스로는 '고독'을 못견디게 괴로워하는 경우다. 그럴수록 더 스스로를 격리하고, 그럴수록 더 고독에 몸부림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경우를 정신치료의 현장에서 가끔 본다. 그리고 그런 병적 고독의 경증에 걸려 있는 사람을 일상 주변에서도 가끔 본다. 이런 고독은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 할 고독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절대적인 고독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실존적 고독이라고 불러 보자.

  그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삶의 진행은 내가 결정한다는 인식, 그래서 그 책임을 나 홀로 지고 남에게 전가를 아니한다는 인식, 궁극적으로 나 자신 이외엔 달리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인식, 따라서 혹 의지할 경우에도 그 의지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인식, 나아가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목적 없이 우연히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어가는 존재라는 인식, 그리고 삶의 모든 목적과 의미와 보람은 그 누구도 나에게 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홀로 그것을 발견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인식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한 인간으로서 살고 있다는 존재감, 삶을 이끄는 주인이라는 주체감, 남과는 다른,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독특감이라는 희한하고 고귀한 '선물'의 필연적인 대가라는 인식도 포함한다. 자아가 귀중한 것인 한, 실존적 고독은 직시하고 감수해야 할 짐이다...

 

::: 정범모, 인간의 자아실현

 

 

사회적 고독, 병적인 고독, 실존적 고독...

내 마음을 잠식하는 그 고독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짧은 시일 머물다 가는 사회적 고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좀처럼 떨어져나가지 않은 지독한 그것이 병적인 고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쯤 떨어져나간 내 마음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니 그 속에는 실존적 고독이 잔인하게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오히려 그것은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자꾸만 파고들 뿐이다.

...

반쪽만 남은 내 마음 속에서 나는 내 처절한 실존의 한계를 보게 되었으며 존재감,주체감,독특감이라는 희망 대신 상실감,허망감,공허감이라는 절망을 대면하게 되었다.

...

...

또 다시 지리한 고독을 마주하고 나직이 읊조린다.

'난 희망을 잃을 정도로 실망하지 않습니다'(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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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소녀 2004-03-2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를 만났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차를 한 잔 할 수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방금 만나고 돌아오더라도
며칠을 못 본 것 같이 허전한
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울 때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를 만났습니다.

어디 먼 곳에 가더라도
한 통의 엽서를 보내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그를 만났습니다.




:::이정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중에서



누구에게나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오래오래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가 필요합니다.
외롭고 괴롭고 힘들수록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어쩌면 그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숨바꼭질인지도 모릅니다.


::: 고도원의 아침


"그"를 만나면 어차피 살아가는 한 세상 좀 나아지려나.
평생을 함께 붙어 살았던 외눈박이 물고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