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못해본(제작년까지만 해도 "안해본"이었으나 이제는 "못해본"이라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참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내 나이...이제 곧 스물 하고도 다섯살.정말 문제 있는 것일까?) 내가 연애시집이란 제목(내용은 단순한 연애에 관한 것이 아님)의 낯간지러운 책을 보니 주위에서 일제히 예상했던 반응을 보인다.

"너도 이런데에 관심있니?"

"......"

침묵으로 일관할뿐 달리 하고 싶은 말도 또 해줄 말도 없었다.

설령 이 시집에 수록된 시가 '자연에 관한' 연애시집이 아니었더라도 궁색한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풍구경을 가야만 가을이 왔음을 아는 그들에게 가을이어서 시 한편 마음속에 품고 싶어서 그랬다고,

비록 흔하디 흔한 사랑 한번을 해 본적이 없지만(아니 엄밀히 말하면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을 뿐이지...나는 지겹도록 누군가를 사랑하기만 해왔다,여지껏...) 그들이 하는 연애질(?)은 나에게 그다지 부럽지 않으며 나에게 사랑은,연애는...두 영혼이 함께하는 인식의 성장이기에...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조금은 유별난 방식의 사랑을 원하기에 내게 인연은 더디게 오고 있는 것이라고...그렇지만 혹 기다리다 내 마음의 온기가 사그라들어버릴 것 같아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훈훈한 풍경을 두 눈 속에 담고 싶어 그랬다고 말이다.

...

이 시집을 통해서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접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문재 시인의 발문이 내 마음에 참 와닿았다.읽고 또 읽고...

"연애하기도 어렵지만,연애편지 쓰기는 더 어렵습니다.최고의 연애는 짝사랑이고,최고의 연애편지는 부치지 못한 편지일 테지만,짝사랑만 하다가는 상사병에 걸려 죽습니다...(중략)...

연애란 무엇입니까?제가 보기에,그것은 지독한 질환입니다.편집증과 분열증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치명적인 병(그래서 저는 연애와 결혼을 혼동하는 사람들을 매우 위험하게 여깁니다.연애가 100m 달리기라면 결혼은 트래킹입니다.계곡과 능선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이 칼 루이스처럼 달린다고 상상해 보세요.이보다 무모한 경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전 존재를 내던지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그러나 꿈을 이루었다고 확인 하는 순간,사라져버리고 마는 그런 꿈.그리하여 연애는 늘 과거이거나 미래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연애라는,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지 않는다면,그 삶은 성인식을 치르지 못한 어린이의 삶입니다.유아치(幼兒齒)를 뽑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 어린이는 아직 '나'와 만나지 않은 것입니다.아직도 '그대'를 알아 볼 수 있는 시력과 시야가 없는 것입니다...(중략)...

연애편지를 쓰는 순간,편지를 쓰는 '나'는 일상적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나'와 혹독하게 대면합니다.지금 앞에 없는 '그대'와 한바탕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그래서일까요?저는 연애편지 없는 연애보다는 연애없는 연애편지를 편애하는 편입니다.그렇습니다.시는 연애 없는,없는 연인에게 쓰는 편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전주 집 내 책상 서랍 한켠에는 여러해 묵은 편지지가 있다.적어도 내게 사랑이 오면 연애편지를 써야 겠다라는 생각에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간직하고 있었다.비록 여전히 쓰지 못하는 편지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나는 대신 시를 읽는지 모르겠다.없는 연인에게 편지를 쓰듯이...

 

::: 연애 1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

 

::: 꽃 한 송이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한 송이

 

::: 초가을 2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 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 가을이 가는구나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 초겨울 편지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 당신의 꽃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에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有緣千里來相會...믿어보고 또 믿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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