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

아침 강과 한낮의 강은,그리고 저녁 무렵의 강은 그 표정이 판이하다.엷은 안개에 서린 아침 강은 신선하다.막 세수를 하고 난 얼굴 같다.귀밑머리에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화장기 없는 그런 얼굴 같다.한낮의 강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꾸벅꾸벅 조는 것도 아니고 흐름도 멈춘 채 자고 있는 것 같다.강기슭에 떠있는 고깃배까지도 곤히곤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녁 강은,해질녘의 저녁 강은 잠에서 깨어나 생동한다.낮 동안 멈추었던 흐름도 저녁 바람에 다시 일렁이고,석양의 햇빛에 반사되어 고기 비늘처럼 번쩍거린다.저녁 강은 신비스럽다.강이 지닌 깊은 속마음을 넌지시 열어보이는 것 같다.강 건너 앞산의 그림자가 강심에 은은히 비치는 것이 마치 수묵화처럼 보인다.

저녁 노을이 비친 강은 성자의 얼굴처럼 지극히 고요하고 신비스럽고 사뭇 명상적이다.

 

 

법정 스님의 수상집 가운데 어떤 책에서 발췌했던 글인지 생각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분의 모든 말씀은 내게 언제나 고요한 가르침과 침묵속 깨달음으로 다가올 뿐이다.

 현자는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했던가.

그러나 현자도 인자도 아닌 나는 강이 좋다.적막공산을 품고 도도히 흐르는 그 위엄있는 강이 나는 좋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같은 강도 좋지만 이쪽 강기슭에서 저쪽 강기슭이 보이는 그런 강이 더 좋다.행여 그런 강에 붉어진 앞 산그늘 노을이 수면 위에도 물들고,이내 어둠이 조용히 몰려와 달이 흐르고 별이 첨벙거릴지라면 난 그만 숨죽여 울어버릴런지도 모른다.

...쉴새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소란스러운 그 파도의 바다가 아닌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차 모르는 묵묵한 그 흐름의 강은 유년시절의 내게도,훌쩍 커버린 지금의 내게도 무언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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