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시를 만났던 때는 고등학교 삼학년 수능시험을 며칠 앞뒀을 때였다.
전동성당 보좌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참으로 좋아서 일요일 자율학습을 마치고 그곳에서 미사를 보았었는데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그 특유의 경건한 음성으로 낭송하셨던 이 시는...그냥 듣고 흘려버리기에 너무도 눈물겨웠다.
그래서 그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었다.
그러나 그 시를 달리 알아낼 방법이 없었고 그럴 겨를도 없었던터라 이내 머리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렸다.
그렇게 두서너 해가 흘러가고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로 이 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번 째 이 시를 만나게 되었을때 나는 속으로 참 많이도 울었다.
다시 이 시를 만났던 그 때...나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슬픔을 감추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따금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이 시를 몰래 꺼내서 나직이 되뇌인다.
...오늘처럼 살아가는 게 참으로 버거운 날에는 꾸깃한 종이 한장 펼치어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적시며 한줄 한줄 번지어가는 희망을 아껴읽는다.
::: 박노해, 굽이 돌아가는 길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바른길보다는
산따라 물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 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 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 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 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