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필립 리브의 견인 연대기는 올 초에 3권부터 손에 넣었는데, 3권이라는 이유와 ‘악마의 무기’라는 무서운 표제로 인해 펼쳐보질 못하다가 얼마 전 1권을 가슴팍에 안고는 폴짝폴짝 뛰었다. 와, 이제 시작이야! 부푼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려고 첫 문장을 읽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어느 봄날, 런던 시는 바닷물이 말라 버린 옛 북해를 가로질러 작은 광산 타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p. 11)



뭐여, 이것이.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서 30분은 벙 쪘다. 런던이 북해를 가로지른다고? 런던이 생물이름이여? 나름 상상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알 길이 없었고, 되는대로 문장을 꿀꺽꿀꺽 삼키며 몇 장을 넘겼지만 파악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 상황이 그려지질 않으니 책장 넘기기는 더딜 수밖에. 임자 제대로 만나서 첫 장부터 바짝 긴장했다.



그 임자, 필립 리브. 영국 브라이턴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모털 엔진>므로 2002년 ‘네슬레 스마티즈 어워드’ 금상을 수상, ‘휘트 브레드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 소설 짱이라는 말씀. 견인도시 연대기 4권은 현재 모두 출간된 상태고, 다른 저서로는 <라크라이트><아더왕, 여기 잠들다>가 있다. 그리고 어린이 과학책 그림도 꽤 많이 작업했다.



책의 내용을 말로 설명하려면 참 복잡하다. 때는 35세기쯤이고, 땅 위에 엔진과 바퀴를 단 견인도시들은 먹고 먹히는 전쟁 속에서 날로 궁핍해져가는 상황에 있다. 주인공은 톰. 견인도시 런던에 사는 역사학자 길드 3등 견습생. 어느 날 길드협회회장인 밸런타인을 죽이러 찾아온 소녀 헤스터와 견인도시 밑으로 떨어져 뜻하지 않는 동행을 하게 된다.



둘은 반(反)견인연맹의 도움을 받으며 런던으로 가는 모험에 오른다. 밸런타인의 딸 캐서린은 아버지의 비밀을 캐기 위해 포드를 만나고 그 나름의 모험을 통해 견인도시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일을 알게 된다. 밸런타인과 런던 시장 크롬은 거대한 사냥무기를 개발 중에 있었다. 그것은 21세기 ‘60분 전쟁’에 사용되었던 핵무기에서 고안된 강력한 에너지빔을 쏘는 메두사였다. 크롬은 메두사를 이용한 ‘우주정복’을 꿈꾸며 전쟁에 대한 광기를 보인다.



도시가 공격당할 위험에 처하자 민심은 흉용해지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으나, 시장이 메두사가 출현시켜 타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자, 역사학자를 제외한 모든 주민이 환호하고 그를 찬양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기주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인 것이다.



지구 환경이 거의 다 못쓰게 되어버린, 진흙땅덩어리로 변해버린 시대에 남은 후손들을 상상하는 저자의 시각이 인상적이다. 그들이 먹고 사는 방식은 견인도시를 분해해서 나온 고철쓰레기로 무역하고, 노예를 부리고, 과학기술로 인분을 식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족속들이다. 현재의 인류가 남긴 지식과 대부분의 유산은 쓸모도 없고, 오직 소용되는 것은 전쟁에 쓰이는 무기나 비용이 적게 드는 로봇을 생산하는 일뿐이었다.



저자가 내다 본 미래에는 ‘발전’이라곤 요만큼도 없고, 방탕함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고 결핍된 사회로 그려진다. 신분제로 인한 계급발생은 더욱 심화되어 민주주의와 평등사회가 구현되지 않는다. 또한 지금만큼이나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인간은 35세기에도 문드러진 환경만큼이나 척박한 사회를 살아간다.



저자가 보여준 미래의 모습이 아주 참신했고 흥미로웠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심리묘사나 상황전개, 주인공들의 로맨스 수위, 사건의 심각성이 그려지는 농도, 저자의 위트 등 청소년 문학적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발상이 청소년에게 시사 하는바는 그리 녹록치 않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더 주목하게 되는 작품이다.



으레 미래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리라 생각하지만, 처참한 환경에서 아직도 전쟁의 싹을 틔우는 지도자가 양산되고, 인류는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하루 자신의 신분에 맞게 노동할 뿐이라는 생각,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야 할 우리의 미래상인 것 같았다. 이 책은 우리가 후손에게 어떤 땅을 물려주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전쟁에 대한 대비와 방어를 명목으로 한 끊임없는 무기개발이 미래에 살아갈 이들에게 어떤 영향으로 남을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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