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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로버트 매캐인의 ‘소년시대’는 마지막까지 독자를 붙들고 있는 힘이 참 강렬해서 인상 깊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는데, 번역본은 없었다. 동일 출판사에서 얼마 전 ‘스완송’을 출간했고 나는 이제야 읽는 행운을 누렸다. 전작은 500페이지 두 권, 이 작품은 700페이지 두 권이다. 로버트 매캐먼의 1400페이지 넘는 대작, 크게 호흡한번하고 펼쳐야 했다.
표지부터 기대되는 이 작품은 1987년 작으로 제 1회 브램스토커상을 동시 수상한 베스트셀러다. 그것도 스티븐 킹의 ‘미저리’와 함께 수상했다. 옮긴이만큼이나 왜 이제야 이 작가가 한국에 소개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1952년생인 그는 절필의 기간을 거쳐 지금은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최신작과 그리고 아직 소개되지 않은 여남은 개의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은 세계 3차 대전 그 이후를 그린 환상소설이다.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으로 미국전역이 핵미사일로 초토화된다는 거대한 사건구성은 저자가 80년대에 집필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이 핵으로 파괴된 도시 속에서 어떤 형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장장 1400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크게 세 공간에서 각자 살아남은 인물들을 조명한다. 스완의 무리, 시스터의 무리, 매클린의 무리이다. 스완은 생명을 일으키는 능력을 지닌 소녀이다. 시스터는 유리고리의 인도에 이끌려 스완에게로 향하는 여성이고, 매클린은 악령에 이끌려 악한들을 수하에 두고 부대를 이끄는 대령이다.
그 무리들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닥치게 되는 상황, 만나서 손잡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전율하게 된다. 전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의 전개 때문에 각자의 이야기들이 섞여 어떤 맥을 이루게 될지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결국 선악의 대치를 피할 수 없고, 꺼림칙하지 않은 깨끗하고 환상적인 결말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에 혀를 내두른다.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혹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작가는 각자의 캐릭터에 완전한 개성들을 분출시킴으로써 혼란의 여지는커녕, 오히려 작품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
우리나라는 핵전쟁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늘 존재한다. 언제 또 연평도 사건 같은 도발이 시작될지 모르고, 그것이 전쟁국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때의 전쟁은 핵을 중심으로 한 ‘단 몇 분간의 작전’이면 족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이 소설의 소재는 ‘핵전쟁 그 이후’의 비참하고 잔혹한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상상하고 있기에,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보다 심각한 공포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저자의 ‘악’에 대한 상상이 돋보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온 땅을 덮고 있는 상황,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마저 방사선 때문에 깡그리 멸망할지 모르는 형국에서 악의 성장과 광적인 살인 행태는 인간의 권력욕이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넘어서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핵전쟁 이후에 펼쳐지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 간의 참혹하고 비열한 전쟁’이다. 작가는 이 전쟁의 끝을 선악간의 거대한 대결흐름으로 연계시킨다.
“지금 세상에는 이제 선도 악도 없다오. 남아 있는 거라곤 더 빠른 총 솜씨와 더 거친 폭력뿐이오.” (2권 p. 54)
“전쟁을 벌이다니, 대체 뭘 위해 싸우는 거죠?”
“토지, 마을, 식량, 총, 휘발유, 뭐든지 남아 있는 걸 위해서요.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이오. 소련을 상대할 수 없게 됐으니 자기들끼리 적을 만들어내는 거요.” (2권 p. 63)
아주 동화적인 부분들이 많다. 주인공들이 자연히 ‘욥의 가면’을 쓰게 되고 일정시간 이후에는 그 가면이 벗겨지면서 그 인물의 마음에서 비롯된 ‘진짜 얼굴’을 갖게 된다. ‘선’의 세 얼굴이 더 아름답게 회생하고 ‘악’의 두 얼굴과 그 목소리가 변하게 되는데, 그 악의 생김새라는 것이 가히 가관이다. ‘마음이 담긴 얼굴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악’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 아래, 인간이라는 미물이 얼마나 헛된 인생들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물들을 통해 ‘무엇이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내야 할 이유인가’를 살피면서, 희망이 곧 의지인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희망의 주체인 스완과 그녀의 선한 마음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영혼의 수질을 점검하게 된다.
절망만 가득찬 죽음의 늪지대에서 한 톨의 씨앗을 틔워내는 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 로버트 매캐인의 <스완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