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혼이 죄냐!’. 글쎄,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이제는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얘기가 되었다.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재수 없게 느껴지는 건, 굳이 ‘이혼’자를 붙여서 사람을 수식하는 게 그 자체로 촌스럽고 천박한 느낌을 준달까. 나이를 막론한 이혼이 많아졌고, 한집 걸러 한집으로 ‘이혼’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이왕 할 거면 부끄러움도 머뭇거림도 없는 ‘쿨한 자태’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놓치는 게 있다면, 이혼하는 당사자들의 아픔이다. 이혼은 ‘손해보고 안 살 것들이’, ‘자식 놓고도 사랑 타령이나 하는 것들이’ 내미는 삶의 카드 한 장 정도로 그 심각성이 격하되었다. 가정의 파탄이라는 절망이 만연하게 가득 찬 이 사회는 ‘너만 군대 갔다 왔냐’는 식으로 간단명료하게 서류나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당장에 어느 연예인 부부가 이혼했다는 기사에도 ‘그리 될 줄 알았다’는 댓글이 도배되는 참으로 ‘이성적인’ 사회니까 말이다.



어떤 작품에든 ‘사랑과 배신’이라는 주제를 갖다 쓰기에는 시대적으로 너무 고리타분한 면이 있다. 거기다 요즘 유부녀들은 맞바람으로 복수를 할지언정 질질 짜고 매달리면서 분을 삭이고만 있지는 않는다. 유럽,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남편에게 집착하고 기다리고 애원하고 미쳐가는 상황으로 치닫도록 그려냈다는 것이 특이했다.



남편이 바람났다. 그것도 미성년자랑. 그 미성년자 성인될 때까지 5년을 기다리며 그의 가정과 아내를 기만했다. 때가 되니 미련 없이 홀연 떠났고 소설은 이 여자가 어디까지 미칠 지경이 되어 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사건을 그리지 않고, 이 여자의 내면을 그린다. 독자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



처음에는 분노로 치를 떤다. 남편과 그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려서 잠이 안 오고 입에서는 욕만 줄줄 새고 정신은 온전히 남편 생각으로 멎어버린다. 남매 둘을 키우는데, 스스로 통제가 안 된다. 무엇보다 기억력이 없다. 무엇을 했는지, 하고 있는 건지 어디 있는 건지 정신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상황은 나빠진다. 얼마나 그녀가 남편을 의지하고 살았는지, 그를 얼마나 믿고 사랑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당연히 아이들도 엄마의 이상 징후에 따라 알아서 조심하며 눈치를 많이 본다. 위기의 가정은 본인들만큼이나 아이들에게도 심리적 불안감과 인생의 불행함을 유발한다. 아이가 심하게 아파 누워 앓고 있어도 가만히 앉아서 돌보기가 힘들 정도로 그녀는 정신이 늘 딴 곳에 가 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나는 용감하게 지금상황에 맞서야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이나 생각을 방해하는 무력감이 두려웠다. 그리고 나도 삐딱한 말과 행동이 거침없이 튀어나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 마리오는 세상을 가져가지 않았다. 단지 그 정신만을 가져갔다. 난 30년 전의 어린애가 아니다. 나는의 나다. 오늘을 살고 있다. 역행하지 말자. 정신을 잃지 않고 바짝 챙기자. (p. 77)



그리고 본격적으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자기 합리화식 사유가 시작된다. 사람은 아플 때 제대로 아파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아픔을 정면으로 맞아가며 모조리 다 아프면서 겪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정리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주인공의 사유 중 내 마음에 울리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사랑이란 결국 한 육체에 어떠한 의미들을 부여하는 것일 테니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긴 여정에서, 당신은 그가 인생에 기쁨을 안겨줄 유일한 남자라 여기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는 허깨비일 뿐이다. 당신은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며 그 역시 자신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기회일 뿐이다. 성적 욕망을 취우고자 한 남자는 그 기회를 잡고, 우리는 여럿 중에서 선택받았다는 기쁨으로 인생을 소모하고 낭비한다. 오직 우리를 향한 그 친절에 보답고자 평범한 섹스의 욕망을 교환한다. 그의 성적 욕구를 사랑하며, 그 욕구는 바로 우리와, 오직 우리와 같이 나누는 욕망이라 생각할 만큼 우리는 맹목적이다. (p. 102)



그녀의 집착적인 사랑은 남편이 키우던 개가 죽음과 동시에 끝났다. 개가 죽을 때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며 자신의 고통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런 개가 죽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린다. 그리고 눈물이 마름과 동시에 그녀의 사랑도 말랐다.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일상도 회복된다. 끝내는 사랑의 감정까지도.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의 외형적인 변화를 언급하면서 조강지처의 마음을 짓밟고 선택한 사랑역시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 자체가 워낙 주인공의 심리 안에 갇혀있게 함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여운이 깊다. 사랑이라는 것과 결혼이라는 것을 따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가여운 애들이 철없는 애들이 되어감으로 주인공의 상처를 후벼 파는 장면에서는 ‘정말 인생 답 안 나온다’ 싶었다.



미련할 정도로 사랑에 매여 그 고통에 허우적거렸던 여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 아픔의 분노와 절망감이 다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더 현실적인 마무리를 기대했다. 막판에 좋은 남자를 투입시키지 말고, 저 여자 온전히 혼자 서는 모습을 그려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사랑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진부함이 이 여자의 깊이 있는 사유를 퇴색케 하는 듯도 했다. 여자의 인생이 홀로 서지기까지, 진하게 아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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