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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체탄 바갓 지음, 정승원 옮김 / 북스퀘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패트릭 로스퍼스의 <바람의 이름>이라는 판타지 소설에는 크보스라는 주인공 소년이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면서 특별한 지능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이름하야, 신비대학. 판타지가 판치는 대학에서 그는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낸다. 바람의 이름 2권에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가 자세하게 펼쳐지는데, 읽는 독자의 숨이 막힐 정도로 방대한 학습량이었다. 공부때문에 질식할것 같은 대학 환경은 사람을 어디까지 만들어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제로 인도 최고의 명문대인 IIT대학을 배경으로 하여, 세 명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들이 대학 안에서 느끼는 시스템적인 부조리와 어마어마한 학습량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 불안감, 그리고 학생 평가기준에 따른 인간적 상실감 등을 진지하게 보이면서도 캐릭터 안에 내재한 코믹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졌기를 기대했다.
작가는 체탄 바갓. ‘뉴욕 타임스’에서 체탄 바갓을 인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영어 소설의 작가“로 소개했고, 타임지가 선정한 100인에 들기도 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델리 인도 공과대학과 아마다바드 인도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래서 저자가 IIT대학 생활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다. <콜 센터에서의 하룻밤><내 인생의 세 가지 실수> 등의 작품이 있으며, 책 <세 얼간이>는 한국에서 영화 개봉 날짜 한 달 앞서 발간되었다.
세 얼간이는 입학 첫날부터 선배에게 기합을 받다가 친구가 된다. 부유한 집에 외모도 완벽한 라이언, 뚱보 하리, 뚱보에 울보 알록. 주인공은 하리다. 수업 첫날부터 신입생들은 수업과 과제의 양이 살벌하다는 것을 느끼고 돌발퀴즈나 구술시험 등의 관문이 곳곳에 자리하여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시스템에 겁을 먹는다.
가장 태평한 인간은 라이언. 그는 학교생활이 이래서는 안 된다며 공부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두 친구를 꼬드긴다. 그렇게 놀면서 우정으로 얻은 학점이 셋 다 5점대. 알록은 가난한 형편에 부모는 아프고 지참금 없어 시집못가는 누이에 대한 부담감으로 학점에 매달려 좋은 직장에 가야 하는 형편이다. 우정에 금이 간 상태로 1년을 보내지만, 다시 원상 복귀되는 세 명.
하리는 엄한 체리안 교수의 딸 네하와 연애와 연애를 하고, 체리안 교수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자 시험문제를 빼돌릴 결심으로 네하를 이용한다. 세 명은 작전에 돌입한다. 교수실에서 적발되어 엄청난 패널티를 받아야 하는 위기, 알록은 견디지 못하고 옥상에서 투신. 주인공들은 공황상태가 된다. 베라교수의 도움으로 진행된 라이언의 프로젝트가 한 몫을 했고, 하리가 체리안 교수 아들의 유서를 전하는 것이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소설이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가치를 따질 때 그닥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캐릭터 설정, 사건들이 갖는 개연적 구성, 전개에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필치 모든 것에서 미적지근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코믹적인 요소도 떨어지는 편이고, 독자를 흡입시키지도 못한다.
소재나 배경에 비해 별 얘기 아닌 것이 소설화되었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 대다수가 대학이 가진 시스템적인 문제나 평가요소의 부조리함이나 대학에서의 인간성 상실 등 많은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런 대학이 가진 문제를 풀어내는 것 보다는 그냥 찌질이들의 일상, 얼간이들의 대화, 바보스러운 결정과 저능아스러운 행동등이 부각되어 진행될 뿐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라도 제대로였다면 웃기기라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는 얕고 탁해서 개운하기 힘든 소설이었다.